연극 《얼떨결에 종언》
변영진 연출은 웃기고 여리고 선량하고 수다스러운 일본 희곡을 잘 살리는 연출가다. 그래서 난 《쇄골에 천사가 잠들고 있다》를 참 좋아했다. 어제 보았던 《얼떨결에 종언》 역시 한 시대를 같이 보낸 청춘의 스냅샷들이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라스트 픽처 쇼》를 떠올리게 해서 금방 애틋한 마음이 되었다.
이 작품은 2017년 제23회 일본극작가협회 신인희곡상 수상작인데 공동 작가 중 한 명인 오오타 유우시는 교토대 재학 시절 연극서클에서 활동했고, 이 작품은 그의 모교인 교토대 기숙사 이야기를 모티프로 삼았다.
퇴실하는 날 벽에 메시지를 남기는 전통을 가진 이 기숙사엔 서로에 대한 오해와 사랑, 하지 못한 고백, 담배, 술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재들이 등장하는데, 인턴사원으로 취직해서 먼저 떠나는 카나에를 위해 '뱀나베' 요리를 준비하는 사나코의 진지함은 배꼽을 잡게 한다. 하지만 당연히 그 요리 뒤에도 한 방울의 눈물이 숨어 있다.
제목 '얼떨결에 종언'에서 종언(終焉)이란 한 시대가 끝날 때 남기는 말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 연극이 이쁜 건 왁자지껄 떠들다가도 누군가 떠나기 전 벽에다 한 문장의 메세지를 남길 땐 다들 모른 척 조용히 해준다는 것이다. 스무 살 청춘이 남기는 메시지가 깊어봤자 얼마나 깊은 뜻을 담고 있을까. 하지만 그것 자체가 한 시절을 마감하는 인생의 통과의례이기에 의미가 있다.
나는 전하영 배우의 팬이긴 하지만 유머나 코믹은 풍부한 성량으로 처연함까지 두루 잘 표현하는 송영미 배우의 연기에 찬탄을 금할 수 없었다. 시간이 되다면 기꺼이 산울림소극장으로 달려가서 이 연극을 보시라. ’신타로‘의 방에 모인 ’사나코, 카나에, ‘츄키치’, ‘미츠키는 모두 한 때의 당신과 나를 닮았으니까. 청춘은 늘 서툴고 힘들고 불안하지만 조금만 지나도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으로 변한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까.
작가 : 데구치 메이/오오타 유우시
연출 : 변영진
주최·주관 : 불의전차
기간 : 2026.3.26(목) ~ 5.3(일)
장소 : 소극장 산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