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소리를 보고 듣고 즐기는 야질자질한 쾌감

이희문컴퍼니의 《남창전집(男唱全集)》

by 편성준


어렸을 때 우리 집엔 어쩐 일인지 경기 민요 레코드가 한 장 있었는데 할머니가 가끔 그걸 틀고는 '아니~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같은 구절을 따라 부르곤 하셨다. 나는 그 레코드 재킷에 있는 소리꾼이 무당 옷 같은 걸 입고 있어서 '아, 저렇게 야리꾸리하게 나오는 소리는 무당이 굿 할 때 하는 소리인가 보다' 같은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다.

이희문의 소리는 밴드로도 듣고 소리 마당 공연으로도 듣고 서촌 한옥에서 한 '경기민요 12잡가'로도 들었는데(나 이희문 좋아하네!), 들을 때마다 이 사람은 진짜 예술인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스토리부터 타고난 예술가의 그것인 데다가, 음악에 대한 엄격함과 집념이 자유로운 영혼과 들러붙어 경계를 허물고 그야말로 낭창낭창, '야질자질'하게 시시때때로 만개하기 때문이다. 어제는 2026 이희문컴퍼니 신작 '남창전집(男唱全集)'이라는 타이틀로 올린 공연이었는데 시작과 함께 일언반구도 없이 희미한 스포트라이트 한 줄에 의지해 장삼 자락 휘날리는 이희문의 신비로운 공연이 내리 40분 정도 이어졌다. 이게 공연계에서 소문난 천재 예술감독 여신동 무대미술가의 자신감이구나 싶었다.

이어지는 신예 이채현과 정준필의 소리 역시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젊은 사람들이 뭔 내공이 그리 깊은지 참. 곧이어 이희문이 나와 "저도 제자들이 있는데 이 무대에 못 세워요. 얘들이 하도 잘해서."라며 웃었다. 웃기는 건 둘 다 어린아이들이 입는 색동옷과 고깔모자 같은 걸 쓰고 공연을 했다는 것이다. 유치 찬란한 복장으로 젠더나 나이를 지우고 오로지 예술만 따라오라는 그들의 제스츄어 역시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었으리라.

공연 막바지에 이희문이 "오늘 세종대왕도 오시고, 신사임당도 오시고, 율곡 이이도 오신 것 같은데..." 같은 능청스러운 멘트를 던지고 두 제자가 노래하는 사이 객석을 돌자 여기저기서 지폐가 쏟아졌다. 내 아내도 오만 원짜리를 꺼내길래 "여보, 당신은 넣어 둬."라고 제지했다. 이희문은 온몸에 두른 지폐를 장구 이민형 앞에 가서 다 던지고 들어갔다. 아마도 어제 회식비로 쓰였을 것이다. 한편 아내가 집어넣은 오만 원권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단골 횟집 '한성세꼬시'에 가서 썼다. 이희문 덕분에 나도 술 마셨다. 어제가 마지막 공연이었다.


● 연출 : 이희문

● 무대미술및조명디자인 : 여신동

● 총괄프로듀서 : 이지연

● 연주자: 장구 이민형/피리 이찬우/대금 변상엽/해금 김승태/아쟁 배호영/가야금 추현탁

● 주최 : 이희문컴퍼니

● 주관 : E-Won Art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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