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의 『차별을 훔치는 남자들』
대한민국에서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페미니스트'라고 정체성을 밝히는 순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공격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투사였다면 모르지만 그는 심지어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그런데 뒤늦게 페미니즘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연구하다 보니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페미니즘 하면 떠오르는 '래디컬 페미니즘'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프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게 아니라 '페미니즘의 정의만 제대로 알아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실마리가 잡힌다'라고 속삭이기 때문이다. 넓다. 그리고 구체적이다. 저자는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의 시간》에서 왜곡되고 단순한 사고의 위험성을 찾아내고, 이내 윤석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얼마나 이분법적이었는지도 알려준다. 극우적 세계관이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고 이 연장선에서 '안티 페미니즘 백래시 정치'의 선두주자이인 이준석의 "실력으로 과학고를 갔고 국가장학금으로 하버드를 다녔다"라는 말이 얼마나 '공정'을 심하게 왜곡시키는지 생각하게 해 준다. 또 있다. n번방 가담자가 26만 명까지 추정된다는 사실만 알아도 우리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이 기분 나쁘다는 사람들의 말을 상쾌하게 무시할 수 있다. 세상 보는 눈이 밝아지는 것이다.
좋은 책엔 공통점이 있다. 아내와 내가 책 쓰기 워크숍 멤버들에게 늘 추천하는 요조의 『아무튼, 떡볶이』에 떡볶이 얘기뿐 아니라 저자의의 삶과 인생관이 녹아 있는 것처럼 이 책 역시 페미니즘이나 역차별 얘기만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보는 관점과 방향성이 담겨 있다. 장담하건대 이 책을 읽고 나면 《흑백요리사》의 '안대 미션'조차도 다르게 보게 될 것이다. 그것 만으로도 책값과 책 읽는 데 들인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특히 나도 좋아했던 예소연의 단편 「우리 철봉하자」나 「그 개와 혁명」에서 뽑아낸 저자의 통찰에 감탄했다. 「그 개와 혁명」에 살짝 등장하는 남자 차장님 캐릭터를 작가가 왜 넣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잠깐 숙연해질 정도다. 궁금한 분은 얼른 책을 사서 펴보시라. 62페이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