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세언 셰프의 스파게티집 이야기
계세언 셰프와는 동네 음식점 ‘디미방’의 단골손님으로 만났다. 그땐 잠깐 쉬며 가게 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는데 어느 날 성북구청 앞에 파스타 가게를 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아내와 두 번 가게에 갔었는데 손님이 그리 많진 않았다. 손님은 없는데 혼자 반짝이고 있던 크리스마스트리와 전구가 쓸쓸해 보였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만 그 가게는 곧 문을 닫았다. 그리고 잠시 쉬던 계 셰프는 이번엔 한성대입구역 삼선시장 골목에 ‘아삐에디’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파스타집을 하나 냈다. 횟집 옆에 제대로 된 간판도 없는 곳이라 처음엔 찾기가 힘들었다. 종업원 없이 계 셰프 혼자 하는 가게였다. 한번에 앉을 수 있는 좌석은 최대 일곱 명 분이었는데 사람들은 기꺼이 줄을 서서 좋아하는 파스타를 사 먹었다. 계 셰프는 다섯 가지의 기본 메뉴는 물론 작은 칠판처럼 생긴 입간판에 그날의 파스타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일 년간 함께하는 100가지 파스타’라는 제목 아래 일주일에 두 번씩 새로운 파스타가 등장했다. 일 년이 48주니까 얼추 100 가지 파스타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획이었다. 피자도 샐러드도 없이 오로지 파스타뿐이었고 피클 말고 다른 음식은 물이 전부였다.
이탈리아 유학파인 계 셰프는 정통 파스타를 구현하고 싶어 했다. 가격이 일반 파스타집의 반 정도였기에 엄청 좋은 재료를 쓸 순 없지만 쓸 데 없는 치장 없이 구할 수 있는 신선한 재료들과 가장 단순한 레시피로 맛을 냈다. 레스토랑에서 흔히 사용하는 토마토 소스나 치킨 스톡을 쓰지 않고 청정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 것이었다. 나는 매번 이름을 듣거나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거나 까먹지만 알리오 올리오에는 오일의 맛이 충분히 살고 토마토 스파게티에선 시지 않고 진한 토마토 맛이 제대로 살아 있다는 것만큼은 늘 느낄 수가 있었다.
아내와 나는 신이 나서 아삐에디를 들락거렸다. 아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아삐에디의 스파게티는 입소문이 퍼졌고 그걸 본 조선일보 김성윤 기자가 다녀가 극찬을 하는 바람에 가게는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아삐에디는 이태리어로 ‘걸어서’라는 뜻이라는데 말 그대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이런 파스타집이 있다는 건 횡재에 가까운 일이었다. 더구나 계 세프는 밤이면 가끔 동네 술집에서 마주쳐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는 정다운 이웃이었다.
지난 월요일 낮엔 예전 옆집 총각과 함께 세 명이 가서 파스타를 다섯 그릇이나 먹고 일어서는데 계 셰프가 이번 주까지만 가게를 하고 접어야겠다는 얘기를 어렵게 던졌다.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어떤 식품업체의 임원이 와서 스파게티를 먹고는 회장님에게 추천을 했는데 그 회장님도 몰래 먹어보고는 계 셰프를 불러 전격적으로 딜을 했다는 것이었다. 용인에 있는 좀 더 큰 매장에서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사업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스카우트였다. 축하해 줄 일이지만 우리 부부에겐 너무나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파스타는 ‘데이트 음식’이었다. 가격이 비싸고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긴 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거품도 많았다. 가격을 올리기 위해 치장을 많이 하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계세언 세프는 다른 요소들을 모두 거둬내고 본질에만 집중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일이든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아삐에디의 스파게티를 통해 또 한 번 배웠다.
지금까지 계 셰프가 선보인 파스타를 단 한 가지도 빼놓지 않고 모두 맛 본 손님이 딱 한 명 있다고 했다. 삼선시장 골목 맞은편에 있는 과일가게 총각이란다. 가게를 접는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도 이 정도로 아쉬운데 그 총각의 마음은 오죽할까를 생각하며 그나마 위로를 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