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입니다
나의 소유물들은
나와 같은 극이라
서로를 밀어낸다
어제는 아내와 함께 평창동에 있는 어떤 집에 찾아갈 일이 있어서 택시를 탔다. 처음 가는 곳이라 기사분께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찍고 가자고 부탁을 했다. 개인택시 기사분이었는데 조수석 뒤에 붙어 있는 성함이 외자라 기억하기가 쉬웠다. 가는 도중 택시 안에서 문자 메시지가 뜨길래 열어보니 그제 분실신고를 해서 새로 발급된 카뱅 체크카드를 두 시쯤 집으로 가져올 테니 기다렸다가 수령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시간에 외출 중이니 조금 늦게 오시거나 아니면 현관 앞에 놓고 가라고 답장을 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그냥 놓고 가도 된다고 덧붙여 보냈다.
아저씨는 오랫동안 성북동에 살았고 집은 홍익사대부중고 맞은편이라고 했다. 아저씨는 성북동의 대저택에 살고 있는 대기업 총수 가족들의 집이나 유명 연예인의 집들을 아주 잘 알고 계셨다. 우리는 "그 사람도 여기 살아요?" 하고 연방 신기해하면서 성북동을 넘어서 국민대 앞을 지나 평창동으로 들어섰다. 꼬불꼬불한 평창동 길을 올라가면서도 아저씨는 여기 또 어떤 재벌 가족이 살고 무슨 무슨 연예인과 작가가 사는지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한참 골목을 올라가다가 목적지 부근이 되어 차가 멈췄다. 나는 신용카드로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렸다. 만나기로 한 분이 집 앞에 나와 계셨다. 먼저 인사를 하는 아내를 따라 나도 인사를 하면서 주머니들을 주섬주섬 만져보니 스마트폰이 없었다. 택시에 흘린 것이었다. 바로 뒤로 돌아 뛰어갔으나 택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아내는 한숨을 쉬었다. 며칠 전에도 택시에 스마트폰을 흘렸다가 간신히 찾더니 기어이 또 흘렸냐는 것이었다. 더구나 처음 만나는 사람 앞에서 이런 소동을 벌이고 있으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내는 카드회사에 전화를 해서 사용내역을 조회하면 택시회사 전화번호를 알려 줄 거라며 내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건네고는 마중 나온 분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아내의 스마트폰엔 국민카드 대표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전화를 거니 ARS 안내멘트가 흘러나왔다. 나는 안내에 따라 이것저것 버튼을 누를 것을 고려해 스피커폰으로 전환하고 시키는 대로 버튼을 꾹꾹 눌렀다. 대저택들이 즐비한 평창동의 넓은 골목으로 낭랑한 여성 안내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몇 번의 시행착오와 안내원의 친절함 덕분에 기사 아저씨와 가까스로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아저씨는 택시 뒷좌석을 확인하겠다고 하더니 "어, 있네.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죄송하지만 다시 나를 내려준 곳으로 좀 와주십시사 부탁을 드렸다. 이십 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나는 뒤늦게 찾아뵙기로 했던 집으로 올라가 아내와 함께 주인분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덧 십오 분이 지나 양해를 구하고 다시 집 앞 골목으로 내려갔다. 이십 분쯤에 정말로 택시가 와서 창문을 내렸다. 아저씨는 집에 거의 다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으려다가 전화를 받고 다시 왔다고 하며 웃었다. 나는 너무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신용카드를 내밀었더니 미터기도 안 켜고 왔다고 하시길래 적정선을 합의해 칠천 원을 결제해 드렸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내 스마트폰을 흔들어 보이고 웃으며 스마트폰을 건네었더니 아내가 "내가 못 살아." 라고 말하며 눈을 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소유물들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 틈만 보이면 나에게서 도망치려고 한다.
저녁때 대학로 책방 <책책>에서 있었던 '윤광준의 방 - 시선' 행사에 참석했다가 나오면서 또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두고 나오는 바람에 다시 찾으러 책방까지 뛰어가야 했다. 헐레벌떡 숨이 턱에 닿아 스마트폰을 들고 나오는 나를 보고 아내는 "스마트폰을 하루에 두 번이나 잃어버리다니, 대단한데!"라고 칭찬을 해주었다. 집에 도착해 대문을 여니 에어컨 실외기 위에 새 체크카드가 얌전히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