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석의 [미성년]
김윤석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있었다. 출연하는 영화마다 너무 잘난 척을 하는 바람에 감독이 뛰쳐나갔다느니, 배우가 하도 감독질을 해서 영화가 엎어졌다느니 하는 얘기들이었다. 하긴 내게도 [범죄의 재구성], [타짜], [추격자] 등에서 보여주던 놀라운 카리스마가 [화이] 쯤 가니 좀 지겹구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그가 감독 데뷔를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작품도 그런대로 잘 빠졌다는 평가였지만 굳이 극장에 가서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로버트 레드포드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배우 출신 감독이 뛰어난 작가로 변신하는 경우가 이 좁은 지구에서 그렇게 자주 일어나겠어? 하는 마음에서였다.
오늘 전철에서 브런치 글을 읽다가 김민식 PD가 쓴 [미성년]의 리뷰를 읽었다. 아무래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왓챠에서 상영한다는 글을 읽고 집으로 와 노트북을 켰다. 나는 왓챠 회원이니까. 아내는 이미 케이블 TV로 이 영화를 보고 좋다고 말했으므로 나 혼자 노트북 앞에 앉아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바람을 피우다 걸린 중년 남녀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 뻔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시나리오는 클리셰라 느낄 만한 것들은 다 걷어내고 단도직입적으로 팍팍 치고 나가는데 연기자들의 억양이나 호흡에서 뻔한 구석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아 놀라웠다.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출연했다는 김혜준, 박세진의 연기도 좋았고 염정아나 김소진은 멋졌다. 김윤석은 '착하기만 하고 대책은 없는 남편 또는 연인' 역할을 넘치지 않게 잘 해냈다. 심지어 '박서방' 역으로 한 컷 출연하는 이희준이나 '방파제 아줌마' 이정은까지 최고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나는 십 대들을 다룬 영화에서 그들을 서툰 어린애가 아닌 '그냥 나이만 어린 어른'으로 보는 시각을 좋아하는데 지금까지는 윤성현의 [파수꾼]이 그런 영화였다. 이제 내가 만든 그 카테고리에 김윤석의 [미성년]을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염정아든 김윤석이든 나름 연기에 진정성이 있어 좋았지만 영화 보면서 울지 않으려고(아내가 또 놀릴까 봐) 애써 냉정을 유지하면서 보았는데, 마지막에 김소진이 컵라면 먹다가 우는 장면에서는 할 수 없이 조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