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시인의 독후감 '엄마는 아무나 하나'
[피로 물든 방]이라는 앤절라 카터(언제부터 안젤라는 앤절라가 되었던가)의 소설집에 대해 김민정 시인이 쓴 '엄마는 아무나 하나'라는 독후감을 읽었다. 이 독후감은 '아, 내가 이런 책도 샀었지. 일단 책값이 싸서 샀던 것 같긴 한데(880페이지가 넘는 분량인데 8,800원밖에 안 한다)'라고 생각하며 다시 펼쳤던 [한국 작가가 읽은 세계문학]이라는 문학동네의 독후감 모음집 증보판 되시겠다.
오늘 아침에 모처럼 독서를 좀 해야지 하고 예전에 읽었던 토마스 귄지그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이거 뚜라미 선배 이진희 누나한테 빌린 건데 아직도 안 가져다주었음)에서 인상 깊었던 킬러 이야기를 다시 찾아 읽으려다가 실패한 후 약간 화가 나 있던 나는 그 책 밑에 깔려 있던 이 두꺼운 독후감 모음집을 발견한 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에 대한 문학평론가 정홍수의 글부터 먼저 읽었다. 예전에 무척 재밌게 읽었던 작품에 대한 글이라 그런지 독후감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김민정 시인의 독후감을 펼쳤다.
지난 추석 때 대낮부터 전 부치는 엄마 옆에서 그걸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던 김민정 시인이 '엄마는 어쩌자고 나의 엄마가 되었나'를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독후감은 작품집의 표제작 <피로 물든 방>의 주요 내용은 물론 시인의 어머니가 예전에 마당을 부리나케 쏘다니던 쥐새끼를 연탄집게로 어떻게 눌러 죽였는지, 키우던 진돗개가 동네 개천에 빠졌을 때 어떻게 건져냈는지까지 더불어 알게 되는 이점이 있다. 특히 이 독후감의 클라이맥스는 '모성적 텔레파시'를 강조하는 대목인데 김민정 시인은 이를 '날치기를 당한 내가 경찰서에서 울고 있을 때 새벽 세 시쯤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온 엄마' 에피소드에 기대 설명하고 있으니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들은 어서 이 책을 사서 마저 읽어보시기 바란다.
나도 가끔 독후감을 쓰긴 하지만 독후감이라는 게 스포일러를 좋아하는 변태적인 독자를 위한 글이 아니라 독자가 미처 읽어보지 못한 책을 새삼 읽고 싶게 만들기 위한 글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책은 그 소임을 다 하고 있다고 여기기에 충분하다. 책 표지 제목 밑에 '김연수 김애란 심보선 신형철 최은영 외 지음'이라 쓰여 있는 것은 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한 출판사의 뻔한 수작임이 분명하지만 목차를 펼쳐보면 이 작가와 평론가들 말고도 이문재 정혜윤 하창수 김원우 박민규 김경주 전아리 성석제 허수경 구효서 류보선 황인숙 천명관 신수정 황정은 조남주 정여울 장석주 루시드 폴 유희경 김금희 백민석 정끝별 정세랑 조재룡 정지돈 등 쟁쟁한 필자들이 그득하니 출판사의 의도에 따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어쩌다 '되시겠다'라는 이철용 성우의 의고체를 선택하는 바람에 글에 뽕이 좀 들어갔는데 그걸 빼지 못하고 끝맺음을 하게 된 것이 못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