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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06. 2020

오늘도 우리 부부는 ‘같이 죽자!’라고 외쳤다

PAPER 256호에 실린 우리 집 이야기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결혼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인 인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우리 부모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부부들이 하나 같이 불행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는데 그 불행의 원인은 대부분 배우자들 때문이었다. 배우자가 바람을 피워서, 배우자가 술을 마셔서, 배우자가 폭력적이라서, 배우자가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배우자가 정 떨어지게 굴어서, 배우자의 부모가 너무 모질어서 등등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불행한 가정에는 저마다 버라이어티 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 이유를 떠받치고 있는 공통분모는 알고 보면 허무하고도 단순했다. 그들이 헤어지지 않는 이유도 대개 똑같았다. "내가 애들 때문에 이러고 살지..."

이런 전후 사정으로 인해 일단 결혼을 하더라도 애는 낳지 말아야겠구나, 라는 비뚤어진 결혼관을 가지게 된 나는 나이가 들면서 애는 물론 당사자도 책임지기 버거우니 결혼은 하지 말고 가끔 연애나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자조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연애를 하면서도 결혼이나 동거, 함께 하는 미래 등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이 가벼운 농담이나 지껄이다가 술집으로 달려가는 나를 여자들은 쉽게 걷어차고 냉큼 다른 남자들에게 시집을 갔다. 나는 그녀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 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러다가 아내를 만났다.


(중략)


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본 드라마에서도 남자들끼리 의형제를 맺을 때는 억지로 팔뚝을 그어 피를 섞었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피로 맺어진 동지는 아니고 그냥 서로를 존중하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도 쉽게 서로를 지겨워하지 않는 친구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같이 살자는 말 대신 이렇게 외치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다. 같이 죽자!


(*잡지가 발행된 지 며칠 되지 얼마 않았는데 전문을 다 올리는 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일부만 올리는 것으로 수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전문은 페이퍼를 읽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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