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형 한옥 집수리 23일째
나는 이상하게 은행이나 관공서 같은 델 가면 주눅이 든다. 최근엔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러 은행을 좀 돌아다녔는데 아파트와 달리 주택은 대출 상한선이 매우 낮은 데다가 우리 집은 지은 지 오래된 주택이라 제1금융권에서는 대출 자체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반은행을 못 가고 마을금고나 수협 같은 지방은행에 주택담보대출을 알아보러 다니는 내 마음은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나는 회사를 그만둔 상태라 창구에서 서류를 작성하며 고정 수입이 없다는 얘기를 하다 보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뭔가 잘못 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열패감마저 드는 것이었다. 어제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나는 아내에게 은행 가는 게 무섭다고 말했다.
"여보, 솔직히 난 은행 가는 게 무서워."
"뭐가 무서워? 지난번에 알아본 대로 가서 하면 되지."
"그래도 혹시나 안 되면 어떡하나 해서."
"안 되면 다 취소하지."
"하하, 이제 와서 어떻게 다 취소를 해."
나의 소심한 성격을 아는 아내가 농담을 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안 될 게 뭐가 있나. 그래, 안 될 리가 없지. 나는 그렇게 속으로 혼자 여러 번 다짐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소심하고 뭐든 익숙해지지 못하는 걸까 생각하면서.
아침 겸 점심으로 채소 비빔밥을 맛있게 먹고 밑으로 내려갔다. 아내는 오후 2시에 물고기 박사 황선도 관장님 부인인 강순희 선생이 우리 집 공사하는 걸 구경하러 오기로 했으니 마을금고부터 가자고 했다. 우리가 대출을 알아본 은행은 마을금고였다. 마침 전에 상담했던 직원이 자리에 있어서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무 문제없이 대출이 가능함을 확인했다. 대출금 액수와 대출금이 필요한 날짜, 필요한 서류 등등을 다시 찬찬히 체크했다. 전에 알아볼 때보다 대출 금리도 더 내려가 있었다. 우리는 이게 고정금리였으면 얼만 좋을까, 라는 얘기를 하면서 마을금고에서 나왔다.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성북동콩집에 가서 커피를 한 잔씩 마시기로 했다.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를 둘러보다가 전자책을 꺼내 장석주의 [조르바의 인생수업]을 조금 읽었다. 요즘 [그리스인 조르바]와 함께 번갈아 읽고 있는 책이다. 잠깐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갔는데 나와 보니 그새 아내가 사라지고 없었다. 어리둥절해하는 나를 보고 사장님이 "사모님 먼저 가신다고, 현장으로 곧장 오시래요."라고 전해주는 것이었다. 아마 강순희 선생이 도착했다는 연락이 와서 급하게 나간 것 같았다. 배낭을 열어보니 내 지갑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전자책과 스마트폰, 지갑 중에서 급한 대로 지갑만 배낭에 던져 넣은 것 같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순식간에 움직였을 아내를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현장에 갔더니 임정희 목수님, 김치열 목수님, 김정국 목수님, 이필식 미장 장인 등 총 일곱 분이 각자 분주하게 맡은 바 일을 하고 있었고 아내와 강순희 선생이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강순희 선생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공사하고 있는 집 공간들에 대해 거칠게 설명을 해드렸다. 이야기를 나누며 살펴보니 마당에서 보이는 부부침실쪽 회벽이 어느새 다 칠해져 있었다. 아름다웠다. 침실과 게스트룸 사이의 옷장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침실에서 밖으로 보이는 창의 프레임이 멋져서 또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아내는 임 목수님과 주방 씽크대와 수납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강순희 선생은 한옥이 너무 멋지다고 감탄을 거듭하셨고 내가 툇마루가 놓일 곳들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다 만들어지면 너무 좋겠다고 손뼉까지 치셨다.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서천에 있는 남편을 두 달이나 못 봤다고 하길래 내가 "우와, 그 정도면 거의 헤어진 수준인데요?"라고 농담을 했다. 임 목수님이 방금 필요한 공사비를 더 보내 달라고 했다고 아내가 말하길래 이따가 입금을 해드리겠다고 대답했다.
밖으로 나와 커피나 한 잔 할까 했더니 강 선생은 아까도 커피를 마셨다면서 무슨 커피를 또 마시냐고, 차라리 어디 가서 막걸리나 한 잔 하자고 해서 또 구포국수로 갔다. 가는 길에 강순희 선생이 백에서 와인을 한 병 꺼내 내게 건네셨다. 선물로 가져온 것이었다. 나는 뭘 이런 걸 사 오셨냐고 하며 내 배낭 안에 넣었다. 매운파전과 지평막걸리를 시키고 현재 서천의 국립행양생물자원관에서 거의 갇혀 지내다시피 하는 황선도 관장님의 근황 얘기를 했다.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오가지 못하고 지내는 가족이 많은데 이 분들도 딱 그런 상황이었다. 바르셀로나에 있는 딸 얘기도 했다. 아빠와 엄마, 딸이 모두 떨어져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전부터 들었던 얘기들을 종합해 보면 딸은 워낙 어른스럽고 독립적인 데가 있는 친구라 크게 걱정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막걸리를 더 시켰다.
이야기는 흘러 흘러 강순희 선생이 인사동에서 '소떼'라는 카페를 운영할 때 에피소드와 황선도 박사님을 처음 만났을 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황 박사님의 젊은 시절 이야기와 시댁 식구들과의 일화 등 오밀조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더 이상은 언급을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골뱅이 무침을 한 더 시키고 막걸리를 여섯 병쯤 마시며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운 우리들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화잘실에 다녀온 내가 계산을 했더니 강 선생이 자기가 계산하려고 했는데 왜 먼저 했느냐고 야단을 치셨다. 술에 취한 아내는 일찍 자고 나는 냉장고에 있던 햄과 비상용으로 사놓았던 술 '서울의밤'을 꺼내 혼자 조금 더 마셨으나 배가 너무 불러 마시다 남은 술은 씽크대에 따라 버리고 아내 곁에 가서 누웠다.
아침에 파란대문집에 와서 뭔가를 끄적끄적하고 있는데 아내가 어서 임 목수님에게 공사비를 송금하라는 카톡 메시지를 전해왔다. 어제 술 마시느라 까먹고 안 보낸 것이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은행 어플을 열어 송금을 시도했는데 이상하게 일회용 비밀번호 오류가 연거푸 뜨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숨을 몰아쉬고 신중을 기해 일회용 비밀번호를 입력했으나 또다시 오류가 났다. 내가 아무리 부주의 한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연속 네 번이나 번호를 잘못 입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공인인증서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공인인증서 재발급 버튼을 눌렀더니 본인의 증명서 사진을 찍어서 본인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 나왔다. 지갑을 안 가지고 왔는데. 아이 참. 다시 집으로 가서 책상 위에 있는 지갑을 들고 나오며 아내에게 오류가 나서 입금이 안 된다고 사정 설명을 하고 다시 와 파란대문집으로 와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 프레임 안에 신분증을 맞추고 기다리면 자동으로 찍히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어플 카메라가 읽은 내 이름은 편성준이 아니라 '전성준'이었다. 화가 났지만 꾹 참고 다시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몇 번을 해봐도 천성준, 핀성준이라고 오자가 떴다. 수동으로 이름을 고쳐도 안 된다는 안내만 떴다. 정말 화딱지 나는 은행어플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임 목수님에게 전화를 해서 지금 입금을 하려 했으나 자꾸 오류가 나서 못 보내니 이따 아홉 시 이후 은행에 직접 가서 입금을 하겠다고 말했다. 임 목수님은 나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껄껄껄 웃으며 그렇게 급하지 않으니 이따 오후에 현장 오는 길에 입금해도 된다고 말했다. 나는 알았다고, 죄송하다고, 고맙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멀쩡하던 은행 어플도 중요할 때는 말을 안 듣는 게 나의 일상이다. 이러니 어찌 내가 은행에 가거나 은행 업무를 보는 게 떨리지 않겠는가. 아내 말대로 나는 참 손이 많이 가는 인간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