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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7. 2020

손톱 깎는 벤치

우리 집 옆 학교 벤치 자랑

언덕 꼭대기에 있는 우리  바로 옆엔 성북동에서 유서 깊은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하나씩 있는데 뒤뜰 쪽에서 올라가다 보면 학교 후문을 지나 체육관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보인다. 평일에 사람들은 물론 학생들도  지나다니지 않고 계단 중간에 벤치도   있어서 나는 가끔 혼자 거기 앉아서 손톱을 깎는다. 한가롭게 손톱을 깎다 보면 체육관에서 농구하는 학생들의 농구화 마찰 소리와 함성이 간간히 들리고 앞쪽으로는 학교에서 심어 놓은 온갖 꽃들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꽃들 위로 우리 집 지붕도 살짝 보인다.

오늘도 오후에 혼자 벤치에 앉아 손톱을 깎고 있는데 학교에서 일하시는 아저씨  분이 저쪽 계단에서 나뭇잎도 쓸고 뭔가 고치기도 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저씨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월요일부터 동네 주민이 반바지를 입고 남의 학교 벤치에 앉아 손톱이나 깎고 있으려니까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아저씨가 누구냐고 물으면 " 윗집에 사는 사람"이라고 대답을 해야지, 혹시 회사  다니냐고 물으면 원래 대기업에 다니는데 지금은 아파서 잠시 요양 중이라고 대답해야지... 뭐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쇠스랑을 어깨에 걸고 허무하게 그냥 지나가셨다. 손톱을  깎은 나도 그냥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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