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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12. 2020

암표의 추억 :국제극장에서 본 [사형도수]

내 영화로운 나날들

사형도수 (1979년) 원화평 감독. 성룡, 원소전, 황정리 출연. 국제극장에서 암표를 얻어 들어갔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내리 두 번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어렸을 때 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가 몰려 있던 종로3가가 개봉관의 중심지였다면 광화문 한복판에 독야청청 서 있던 '국제극장'은 개봉관의 자존심이었다. 중학교 1학년 겨울, 몹시 추웠던 일요일 아침에  형과 함께 국제극장으로  <사형도수>를 보러 갔다. 이 영화는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취권> 바로 전에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취권이 너무 히트를 치다 보니 우리나라 영화사가 뒤늦게 수입해 개봉한 코믹 무술영화였다. 그때는 예매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일찍 가서 줄을 서는 방법밖에 없었고 히트작의 경우는 몇 시간씩 매표소 앞에 줄을 서야 하는 게 예사였는데 사람들은 이를 '장사진(長蛇陣)'이라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이 긴 뱀처럼 줄을 지어 늘어선 모양을 이르는 말로, 늘어선 사람들 사이로는 암표상이 기승을 부렸다. 우리도 표를 사려고 '암표는 사지도 말고 팔지도 맙시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배경으로 줄을 서 있는데 갑자기 어떤 고등학생이 형에게 아는 체를 하는 것이었다.


그 학생은 형의 친구였는데 암표상이었다.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고 형은 고등학생이었다. 형의 친구는 우리에게 일렬 번호로 표를 사주면 그걸 받고 좌석은 따로따로지만 더 일찍 들어가 영화를 볼 수 있는 표를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형과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는 표를 두 장 사서 그 친구에게 주었다. 우리는 곱은 손을 싹싹 비비며 뒤늦게 인사를 나누었다. 암표 판지는 얼마나 됐냐? 며칠 됐어. 이 영화는 봤냐? 아직 못 봤다 씨발. 오늘 표 좀 팔면 나도 볼 수 있으려나... 영화는 너무 재미있었다. 천애고아인 성룡이 무술관에서 걸레질이나 하면서 구박을 받고 자라다가 강호의 숨은 고수 백장천('소화자'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백장천이었다)을 만나 무술을 전수받고 실력자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주 예수를 믿으세요"라고 골목골목 외치고 다니며 선량하게 보였던 러시아 신부가 갑자기 원소전에게 칼을 뽑아 들고 "러시아 최고의 검객이다!"라고 외칠 때는 너무나 놀라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우리는 영화가 너무 재밌어서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내리 두 번을 보았다. 두 번째로 볼 때는 좌석이 없어서 계단에 앉아서 보아야 했다. 사람들은 성룡이 관장에게 얻어터지며 울 때는 같이 눈물을 흘렸고 원소전이 코믹한 방법으로 무술을 가르칠 때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 뜨거웠던 극장의 열기가 지금도 느껴진다. 새로운 스타 성룡의 탄생이었다.


사형도수로 성룡을 처음 접한 나는 그해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취권>을 불광극장에서 챙겨보았다. 불광극장은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 앞에 있던 이류 극장이었는데 개봉관에서 놓친 영화를 훨씬 싼 값에 볼 수 있어 좋았다. 이 영화들 이후로 성룡은 이소룡을 잇는 홍콩무술영화의 간판스타가 되었다. 비장했던 이소룡과 달리 코믹한 액션을 선사했던 성룡의 무술과 연기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엔터테인먼트였다. 성룡은 특히 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해 한국말도 곧잘 했고 한국 톱 여배우와 스캔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후로 성룡은 '추석이면 찾아오는 사나이'가 되었고 사람들은 영화가 끝나고 나면 엔딩 타이틀과 함께 어김없이 등장하는 'NG 장면'에 열광했다. 성룡은 [홍번구] 등을 통해 미국에 진출했고 결국 할리우드에서도 인정받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언젠가 소림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 무술학교에서 배우는 학생들 대부분이 '성룡 같은 스타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2000년대 초반, 내가 다니던 광고대행사에서 성룡을 주연으로 하는 긴급출동 서비스 광고를 기획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광고를 진행했던 팀의 아트 디렉터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 회사 자본금 규모 등을 쓰라고 하길래 성룡 측에도 똑같은 요구를 했더니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가 열여섯 채'라고 해서 놀랐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놀랐던 것은 자세히 알고 보니 열여섯 채가 아니라 '열여섯 동'이었다는 사실이다. 성룡은 이미 엄청난 부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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