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극장에서 조조로 본 영화 [황당한 외계인:폴]

내 영화로운 나날들

by 편성준
AKR20110324149800005_01_i_P4.jpg 황당한 외계인: 폴. 2011년. 그렉 모톨라 감독. 사이먼 페그, 닉 프로스트 출연. [새벽의 황당한 저주]의 열렬한 팬이었던 저는 이 영화를 꼭 극장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한때 월조회의 유일한 회원이었다. 월조회는 '월요일 아침에 조조를 보는 사람들의 모임'의 약자로, 내가 만든 모임이긴 하지만 월요일 아침부터 함께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사람을 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영화는 대부분 나 혼자 봐야 했다. 영화를 본 게 2011년이니 아직 아내를 만나기 전이고 친구와 운영하던 회사를 접고 잠시 프리랜스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을 때였던 것 같다. [황당한 외계인: 폴]은 내가 정말 재밌게 봤던 패러디 영화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코믹 액션 영화 [뜨거운 녀석들]을 만든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의 신작이었기에 내가 아침부터 신사동에 있는 극장으로 달려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월요일 아침에 혼자 극장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에는 언제나 묘한 쾌감과 자기 비하를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너무나 한산한 극장 로비엔 희미한 팝콘 냄새와 더불어 아직 잠에서 깨지 못한 극장 직원의 피곤한 얼굴이 있을 뿐이다. 신사동에 있던 브로드웨이극장 중에서도 조금 작은 상영관 안은 예상대로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아무도 없던 극장으로 내가 들어선지 몇 분 만에 젊은 남녀 한 쌍이 따라 들어왔다. 월요일 아침부터 이런 황당한 영화를 보러 오다니, 저들은 왜 이런 식으로 데이트를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해도 좋은 걸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영화가 시작되었고 나는 곧 스크린에 펼쳐지는 영화 속으로 정신 없이 빨려 들어갔다.


영화는 지구에 온지 60년 된 외계인 폴이 신분을 숨기고 살다가 정부 요원들에게 쫓기는 바람에 우연히 구경 온 사이먼 페그나 닉 프로스트 같은 '너드(nerd)'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지구를 탈출한다는 내용이다(정통 너드로 활약하던 사이먼 페그는 최근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톰 크루즈를 돕는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다). 웃기는 건 폴이 입이 걸어서 욕을 많이 하고 대마초도 피우는 등 행실이 전혀 바르지 못하다는 사실이었는데 그건 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했다. 외계인 폴은 스필버그의 [ET]나 TV 드라마 [엑스파일]에도 영감을 줬던 대단한 존재였지만 극장 안에 있던 커플에겐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상영된 지 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폴이 못돼먹은 19금 욕설을 마구 하는 등 영화가 본색을 드러내자 한쌍의 남녀는 뭐라뭐라 중얼거리더니 결국 극장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졸지에 나는 개봉관 하나를 독차지하며 코미디의 명가 워킹타이틀이 제작한 신작 SF 패러디 영화를 보게 된 것이었다.


솔직히 영화가 그리 뛰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런 영화는 뛰어난 짜임새보다는 얼마나 찌질하고 골때리냐를 찾아내는 게 관건이므로 나는 비교적 만족스럽게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우선 영화에 출연하는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는 시나리오까지 잘 쓰는 똑똑한 배우들이므로 대사들이 입에 짝짝 붙었고 최근 [롱 샷]이라는 코미디에도 나왔던 세스 로건이 폴의 목소리 역이었기에 대사빨도 누구보다 믿음직스러웠다. 그리고 특별 출연한 시고니 위버가 마지막에 우주선 계단에서 맞아 그대로 짜부가 되자 아무렇지도 않게 절제 계단에 호스로 물을 뿌리며 빗자루로 그녀의 핏자국을 싹싹 쓸어내고 있던 외계인 장면은 정말 너무 마음에 들었다.


월조회 영화로는 딱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극장을 나섰다. 말도 안 되는 외계인 이야기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좋아했던 나는 신사동 사거리에서 점심을 먹으러 바쁘게 발길을 옮기는 월요일의 직장인들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해졌다. 무라키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와타나베가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했던 대사가 떠올랐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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