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단지 알바의 추억 - 동아극장 [아웃 오브 아프리카]
한 편의 영화나 소설이 소년의 꿈을 결정하는 것처럼 때로는 어느 한순간의 경험이 인생의 태도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나에겐 [아웃 오브 아프리카]라는 영화가 그 역할을 했다. 그 영화 덕분에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채업자든 성매매업자든 또는 헬스클럽이든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불법 광고 전단지'를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는 사람이 된 것이다.
지독히 추운 겨울이었다. 서클실에 갔는데 '급한 아르바이트'가 있다고 하길래 들어보니 그 전 해에 미국에서 개봉했던 '아웃 오브 아프리카'라는 영화가 일 년 지나 우리나라에서 개봉하게 되었는데 그 작품의 광고 전단지를 길에서 나눠주는 것이라 했다. 이는 당시 박철수 감독의 [안개기둥] 조감독으로 일했고 나중에 [그대 안의 블루]라는 영화를 찍었던 현승이 형이 자신이 속한 영화사의 일을 돕는 차원에서 뚜라미 후배들에게 주선해 준 아르바이트였다. 그때 마침 서클실에 있던 재덕이 형과 규석이 형, 진희 누나 그리고 나까지 네 명이 뽑혀 이색적인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아침이면 장충동에 있는 영화사 사무실에 가서 영화 광고 전단지를 잔뜩 받아 배낭에 넣고 강남 쪽으로 이동했다. 강남 지역의 지하철역 입구에서 사람들에게 영화 전단을 나눠주는 게 주 업무였기 때문이었다. 수입업자가 이번 영화에 힘을 주려고 그랬는지 전단지는 두거운 코팅에 A3지에 가까운 빅 사이즈였다.
날이 추워 다들 장갑을 끼거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어서 그랬는지 사람들은 우리가 나눠주는 전단을 잘 받아주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힌 일이었는데도 우리들은 전단을 받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미워하면서 지쳐가기 시작했다. 사실 악덕 사채업자들의 전단 아르바이트처럼 감시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대충 나눠주는 척만 하다가 어디 구석진 쓰레기통에 처박고 가도 모를 일이었지만 모처럼의 아르바이트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기엔 우리들이 너무 어렸고 무엇보다 지나치게 양심적이었다. 나는 "아, 사람들 참 너무 하네. 나는 앞으로 무슨 전단이든 다 받아 줄 거야!"라고 외치며 우는 소리를 했다. 생각 끝에 우리가 낸 꾀는 고작 지하철역을 떠나 아파트 단지에 가서 전단지를 묶음으로 놔두고 오는 것이었다.
규석이 형이 먼저 나서 아파트 경비실에 가서 미소 띤 얼굴로 수위 아저씨들에게 부탁을 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아주 좋은 영화가 하나 나왔는데, 아파트 주민들께서 편리하게 영화 정보를 얻으시라고 여기에 전단지를 좀 놓고 가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얘기하면 대부분의 수위 아저씨들은 "거기 놓고 가슈. 나도 한 장 주고."라고 말하기 십상이었다. 그걸 보고 용기를 얻은 재덕이 형도 다른 아파트에 가서 똑같은 부탁을 했지만 결과는 사뭇 달랐다.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아주 좋은 영화가 하나 나왔는데..."라고 재덕이 형이 말을 시작하면 아저씨들은 당장 눈을 부라리며 "뭐야, 당신? 안 돼! 저리 안 가?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우리가 보기엔 분명 똑같은 멘트와 표정이었는데 수위 아저씨들은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었다.
일을 끝내고 나면 우리는 날마다 명동이나 남대문에 있는 허름한 술집으로 가서 값싼 안주에 소주를 마셨다. 받는 돈이 하루 오천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진희 누나만 빼놓고 나머지 세 명은 늘 술값으로 일당을 다 탕진하곤 했다. 그래도 하루하루가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어서 힘든 줄은 몰랐다. 아르바이트 도중 하루는 영화사에서 '당신들도 영화를 한 번은 봐야 하지 않겠냐'라고 하면서 초대권을 줘서 모두들 동아극장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이 부분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당시 동아수출공사가 역삼동에 신축한 '동아극장'이 강남 유일의 개봉관이었다고 하고 '다모아극장'은 1986년 12월에 영화배급사에서 영동예식장을 장기 임대해 지었다고 하니 - 이 영화 국내 개봉일이 1986년 12월 16일이다 - 우리가 영화를 본 극장은 동아극장이었던 것 같다).
영화는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하며 아프리카에서 커피 농장을 경영하던 메릴 스트립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로버트 레드포드를 만나 사랑과 모험을 나누는 대서사시였다. 우리는 광활한 아프리카 초원을 날아가는 경비행기의 항공촬영 프레임에 넋이 나갔고, 주요 장면마다 걸핏하면 흐르던 모짜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에 사르르 눈이 감겼다. 특히 석양을 배경으로 메릴 스트립의 머리를 감겨주던 로버트 레드포드의 멋있음엔 속절없이 감탄을 거듭해야 했다. 며칠 전에 만난 진희 누나에게 물어보니 그때 내가 영화 결말을 알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던 일화를 거론하며 웃었다. 영화를 보러 상영관에 들어가기 직전에 내가 '이 영화의 결말을 알고 있어요. 두 사람은 화재로 사망합니다.'라고 했는데 막상 내용이 그렇지 않아서 밖으로 나와 어떻게 된 거냐고 추궁을 했더니 내가 "영화 포스터에 '아프리카 초원에서 불타버린 남과 여'라고 쓰어 었어서..."라는 어이없는 변명을 했다는 것이었다. 누나의 얘기를 듣고 나니 그런 싱거운 농담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도 같았다. 치기 어리던 시절의 헛웃음 나는 이야기다.
이 영화를 만든 시드니 폴락 감독은 연기자로 시작했다가 감독으로도 활약했던 '문예영화'의 달인이었다. 로버트 레드포드와는 꽤 친해서 이 영화 말고도 [추억(The Way We Were)]와 [코드 네임 콘돌(Three Days of The Condor)]을 같이 만들었고 더스틴 호프먼의 [투씨 (Tootsie)]나 탐 크루즈의 [야망의 함정 (The Firm)] 같은 흥행작을 만들기도 했다. 우디 앨런이나 스탠리 규브릭의 영화에서는 배우로 활약하는 그를 볼 수도 있다. 나는 개봉 일 년 전에 TV를 통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본 기억이 나는데 작품상, 감독상을 호명할 때마다 우리나라 진행자가 영화 제목을 '아프리카 탈출'이라고 하던 게 생각난다. 그러데 번역이 너무 이상해서 이번에 인터넷 검색을 하는 김에 더 찾아보니 'Out of Africa'라는 말은 아프리카 탈출이 아니라 라틴어 경구 'Ex Africa semper aliquid novi'에서 따온 것으로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는 뜻이라고 한다. 마치 '러브 액츄얼리'의 원제가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뜻 <Love actually is all around>였던 것처럼 뒤늦게 영화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너무 오래 전의 기억을 더듬느라 며칠을 보냈다. 이 영화를 볼 때 우리는 각자 어떤 꿈을 꾸고 있었을까. 그 겨울 '아웃 오브 아프리카' 전단지를 나눠주며 곱은 손을 호호 불던 우리들은 몇 년 후 졸업을 하고 사회로 나갔다. 서양화과에 다녔던 재덕이 형은 광고회사에 들어가 오디오 PD가 되었고 기계과에 다녔던 규석이 형은 컴퓨터 관련 회사에 들어갔다. 목공예과를 졸업한 진희 누나는 장난감 회사에 취직을 했고 나도 광고대행사에 다니던 선배들의 영향을 받았던 탓에 결국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한동안 이 영화를 잊고 지내다가 며칠 전 페이스북 친구 중 한 분이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는 글을 올렸길래 나도 찾아보게 된 것이었다. 영화의 기억은 아련하지만 덕분에 스무 살 시절의 나를 만날 수 있었기에 고마운 영화다.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 난다는 뜻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 잊지 말아야겠다. 영화 제목의 의미도, 또 내가 이 영화 덕분에 거리에서 전단 나눠주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측은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