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똥범죄자입니다

토킹캣 순자가 가택연금당하게 된 사연

by 편성준


(*주의 : 스포일러 없고 약간 더러움)


나는 아침형 인간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자기계발에 힘쓰는 '어얼리 버드'라서가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배변을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씻고 '캐비쵸크'라는 야채분말 주스를 한 잔 타 마시고 인근의 고등학교로 '방역 지원' 아르바이트를 가는 요즘도 나의 규칙적인 배변 생활은 변함이 없다. 다만 장소가 우리집 화장실에서 학교 화장실로 바뀌었다는 게 조금 달라진 점이다. 아침 일곱 시에 학교에 도착해 학생들이 오기 전까지 여섯 개의 교실 방역을 실시하는 동안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러다 일곱 시 반쯤 되어 학생들이 등교를 마치면 3층에 있는 대기실에 가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으며 잠깐 휴식을 취한다. 나는 대개 이 시간을 이용해 여유롭게 배변을 한다. 학생들이 수업 중인 학교의 4층이나 6층 학생 화장실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스마트폰을 보면서 코로나 19 확산의 세계적 추이를 파악하고 국내 정치 뉴스도 검색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일을 보면서 중간에 변기 물을 내리는 편인데 어느 순간 물이 안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깜짝 놀라 변기에서 엉덩이를 떼었을 때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한 번 더 누른 물 버튼 때문에 배설물이 변기 가장자리까지 올라오고 있었다. 변기가 막힌 것이었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런 일이. 도대체 이 학교 학생들은 변기 안에 뭘 넣는단 말인가. 나는 기겁을 하며 화장지로 뒤처리를 하고 배설물로 찰랑찰랑한 변기를 바라보았다. 어떡한담. 뚜껑을 닫았다. 내가 변기를 뚫을 순 없잖아. 도구도 능력도 없잖아. 이건 그냥 덮어야 하는 사건이야. 증거도 목격자도 없다. 나는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고 비닐장갑을 낀 채 밖으로 나가 복도를 다니며 방역 작업을 조금 하고는 다시 휴식장소로 갔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엎드려 자는 사람도 있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학교 폴리스 할아버지는 순찰을 나가신 모양이었다. 할아버지 자리에 가보니 <법정 행복한 삶>이란 책이 이 주일째 누워있고 PC 화면엔 ‘송가인 임영웅을 배출한 트로트 맛집’이라는 페이지가 펼쳐져 있다. 나이가 들면 다 트로트가 좋아지는 걸까?


9시 20분쯤 대걸레로 복도를 청소하는 시간이 되었다(나 혼자가 그렇게 정한 리추얼이다). 대걸레를 가지러 화장실로 갔더니 청소하시는 아저씨가 플라스틱 양동이를 들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 막힌 변기를 뚫은 데 쓰는 펌핑 도구도 보였다. 머리에 검은 고무 흡입판이 달린 제품이다.

"아, 나 참."

"아니, 왜 그러세요?"

"변기가 막혔지 뭐."

"이런. 도대체 누가 그랬을까요?"

"누가 그랬는지야 모르지. 다들 변기에 이것저것 쑤셔 넣으니까."

"학생들이 그랬겠죠......?"

"그럼 학생들이 그러지 누가 그래요?"

“네......”

"이거 이거 휴지 쓰는 것 좀 봐요. 아무렇게 풀어서..."

아저씨는 학생들이 제멋대로 풀어서 화장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휴지 타래를 가리키며 혀를 끌끌 찼다. 죄책감이 몰려왔다. 그러나 그 똥범죄의 범인이 나라는 걸 밝힐 수는 없었다. 나는 대걸레 두 개를 빨아 복도를 천천히 닦으며 생각에 잠긴 척했다. 다행이다. 아저씨가 막힌 변기를 잘 뚫으셨구나. 역시 베테랑은 달라. 나 같으면 변기 뚜껑을 열어보고는 망연자실했을 텐데. 우리가 쉬는 교실에도 가끔 놀러 와서 학교 폴리스 할아버지와 함께 차 한 잔 하고 그러시는 분인데. 다음에 만나면 잘해드려야겠다. 아니, 갑자기 잘해드리면 의심할지도 몰라. 그래, 그냥 평소처럼 예의 바르게 인사나 드리자...... 생각이 복잡했다. 나는 세상에서 성범죄자가 가장 나쁘다고 생각한다. 남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비뚤어진 욕망을 채우는 것 말고는 다른 범행 동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기범도 나쁜 인간들이다. 사기는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빠트리는 무서운 범죄다. 그에 비하면 이건 그렇게 죄질이 나쁘지 않다. 성범죄나 사기범죄에 비하면 가벼운 변범죄를 지은 것이다. 굳이 이름을 붙여보자면 나는 '똥범죄자'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퇴근을 했고 집에 와서 아내에게 똥범죄 사건 전말에 대해 털어놓았다. 아내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웃었다. 아마 이렇게 똥에 얽힌 에피소드가 많은 남편과 사는 여자도 드물 것이다.


다음날 아침 6시. 맞춰 놓은 스마트폰 알람에 일어나 마루로 나가니 순자가 창가 쪽 의자 위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누워 있었다. 내가 알은체를 하니 눈만 뜨고 바라본다. 어지간히 게으른 고양이다.

"야, 요즘은 개도 길에서 똥을 싸면 비닐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가는 세상이야. 어떻게 똥을 싸놓고 그냥 도망을 칠 수가 있어?"

"무슨 소리야. 난 불가항력이었다고. 휴지를 변기 안에 뭉쳐 넣은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막힌 변기를 무슨 수로 뚫어?"

"속담에 개만도 못한 놈이란 말이 있지."

"이게, 진짜......"


나를 놀리는 순자의 솜씨가 일취월장하고 있다. 순자는 새벽에 몇 분 정도만 인간의 말을 할 수 있는 마법에 걸린 고양이인데 그 귀중한 시간을 나를 비난하거나 놀리는 데 다 쓰고 있다. 누가 마법을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고양이를 선택했어야 했다. 그나저나 순자가 함부로 입을 놀리면 입장이 곤란해지는데. 설마 순자가 새벽에 나가 학교에서 청소하는 아저씨를 만나 대화를 나누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 아, 그래도 모르는 일이다. 순자야, 너는 당분간 가택연금이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저는 고등학교 방역지원 알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