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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31. 2020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보고 용기를 내서 글을 쓰다

전직 카피라이터의 좌충우돌 에세이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나는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오래도록 일을 했고 업이 어느 정도 적성에 맞는 편이었지만 경쟁 PT나 캠페인 실적이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광고회사는 내부 경쟁에서 이기거나 살아남는 게 기본이고 늘 남들보다 튀거나 잘해야 하는데 성격 상 그런 게 힘들었다. 어쩌다 경쟁에서 이겨도 결국 끝까지 그 상태를 유지하거나 발전시키지 못하고 중간에 풀이 죽는 스타일이었고 캠페인 목적에 맞게 컨셉이나 아이디어를 순발력 있게 제시하는 미덕도 타고나지 못한 편이었다. 나는 언제나 광고 카피가 아닌 다른 글을 쓰고 싶었지만 돈이 되는 것은 카피나 네이밍, 기획서 등 광고·마케팅에 관련된 일뿐이었다. 내가 큰 목적 없이 쓰는 리뷰나 꽁트나 짧은 단상들은 좀처럼 돈이 되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 5월에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놀기 시작했다. 당장 걱정이 태산이었지만 아내는 나에게 이제 생활비는 어떻게 할 거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대신 제주도에 가서 혼자서 한 달간 원고만 쓰며 지낼 수 있게 후배의 빈 별장을 주선해 주었고 돌아와서도 다시 광고 일로 돌아가라 채근하지 않았다. 카피라이터였던 내가 광고 말고 다른 글을 써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휩싸여 있을 때 우연히 읽게 된 소설이 바로 전자책으로 구입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였다. 이 작품은 광고계의 지인인 이원흥 농심기획 대표가 어딘가 방송에 출연해 추천한 연작 소설이었는데 그야말로 끝내주는 이야기였다. 미국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에 사는 주민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복잡하고 우스꽝스러운 인간들의 면면을 파격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작품도 좋았지만 특히 고무적인 사실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작가로 성공하지 못할 경우를 염려해서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고 실제 변호사로도 일했지만 그리 재미를 보지 못하고 다시 문학으로 돌아와 이런 멋진 작품을 썼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그녀가 그때 변호사 일을 아주 잘 해냈다면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그녀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분명한 건 그녀의 경우를 보고 용기를 내서 더 열심히 글을 쓰게 되었고, 다시는 광고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굳힐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전국 대형서점에 깔릴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라는 책은 그 발걸음의 첫 결실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부디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책을 한 권씩 사주셨으면 좋겠다. 책을 사달라고 읍소하는 것에는 일말의 비굴함이나 창피함도 없다. 작가가 책을 사달라는 건 그만큼 글이나 메시지에 진정성과 자신감이 있다는 말이고 정정당당하게 평가를 받을 준비도 되었다는 뜻이니까. 친구들이여, 독자들이여, 부디 내가 쓴 책에 관심을 기울여 주고 서점에 가면 보다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 진열해 주시기 바란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나는 기꺼이 '은혜 갚는 두꺼비'가 되어 독을 품고 웅크려 계속 글을 쓸 생각이다. 나의 글로 인해 당신이 한 번이라도 기쁘거나 흐뭇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새로 생긴 나의 꿈이다. 나는 기어이 그 꿈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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