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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05. 2020

동양서림에서 내 책을 사던 날

편성준 에세이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에 얽힌 이야기들


오랜만에 가로수길에 있는 'Paul Han'에 가서 뚜라미 선배이기도 했던 명호 형(Paul Han의 우리 이름은 한명호)에게 바지와 니트를 샀다. 양말도 몇 켤레 사면서 무심코 "11월 16일 출판기념회에서는 보타이를 할까 해요."라고 얘기를 했더니 명호 형이 매장에 있던 보타이와 행커칩을 선뜻 선물로 챙겨 주었다. 홍대 미대를 나와 이탈리아 유학까지 했던 명호 형과 뚜라미 선후배라는 알량한 인연만으로 나는 늘 과분한 대접을 받는다. 가로수길에 나간 김에 신사역 사거리에 있는 '홍미닭발'까지 가서 매운 닭발과 계란찜, 소주를 시켜 먹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은 많지 않았다. 출판사에서 받은 '저자 증정본'이 다 떨어져서 동양서림에 전화를 걸어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있냐고 물었더니 몇 권 있다고 해서 오늘 들르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서점에서 내 책을 내가 사게 되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내와 혜화역에서 내려 서점으로 들어갔다. 사장님도 없고 시집 전문 서전 '위트 앤 시니컬'의 유희경 시인도 없었다. 아내는 이층으로 올라가 이원 시인의 산문집 [시를 위한 사전]을 샀고 나는 1층 매대에 누워 있던 내 책 [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구입했다.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에게 인사를 하고 지난번에 책 선정에 도움을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최진영의 [해가 지는 곳으로]을 읽고 있는데 너무 좋다고 했다. 내가 '독하다 토요일' 시즌5에서 읽을 책들을 선정할 때 동양서림에 와서 사장님에게 추천을 부탁했더니 위트 앤 시니컬 아르바이트생이 국문과 학생이라며 소개를 해줘서 추천받은 책이 세 권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해가 지는 곳으로]였던 것이었다.  


위트 앤 시니컬에서 공짜로 나눠주는 문학잡지 중 '창작과 비평 2017년 봄호'까지 한 권 더 챙긴 아내와 나는 대학로 림스치킨 골목을 걷다가 어떤 이십 대 남녀가 술집 앞에서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내가 그걸 보고 "쟤네들은 서로의 입에서 나는 담배 냄새를 못 느끼겠지? 난 정말 담배 냄새나는 남자와 키스하기 싫었어."라고 말하며 웃었다. 아내를 만나기 일 년 전에 무심코 담배를 끊었던 나는 '난 담배 냄새나는 여자도 괜찮던데...'라는 생각을 하며 신호등 앞에 서서 집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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