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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05. 2020

코로나 19 시대의 북토크와 유자청

책을 내고서 생긴 일들

책을 내고 난 후로는 하루라도 책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 날이 없네요. 오늘은 아내가 마루에서 유자청 담그는 걸 보면서 책을 잠깐 읽고 있었는데 초등학교 동창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 아내의 친구에게 제 책을 선물했더니 너무 재밌게 읽었다 했다면서 마침 그 집에 놀러 왔으니 독자와 통화를 좀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졸지에 모르는 분과 전화로 제 책에 대한 얘기를 한참 했습니다. 제 책을 친구에게 선물한 제 친구도 고맙고 저와 통화를 하고 싶다 하신 그분(성함을 물어 따로 적어놓았습니다)도 너무 고마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이런 식으로라도 '북토크'를 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혼자 잠깐 웃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책을 좋아해 주시는 바람에 출간 한 달여 만에 4쇄를 찍게 되었으니 예전 같으면 동네서점으로 지방으로 북토크를 한창 하고 다닐 타이밍인데 요즘 코로나 19 감염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바람에 미리 잡아 놓았던 행사들까지 모두 연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코로나 19의 기세가 좀 꺾이면 다시 북토크를 하러 다니고 싶지만 지금은 서로 안 만나고 안 모이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합니다(저희 집에서 열리는 독서모임 '독하다 토요일'도 다음 주 토요일 오후 3시에 각자의 집에서 줌을 통해 만나기로 했습니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니 홍보대행사 '애그피알'의 홍순언 대표가 영풍문고 매대에 올라가 있는 제 책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습니다. '당신이 원하던 바로 그 책! 에세이 신간'이라 쓰여 있는 곳 정가운데에 제 책이 있는 걸 보고 반가운 마음에 보내준 모양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사진과 뉴스를 주고받는 것도 일종의 '북토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마운 일이죠. 제가 인복을 좀 타고났다는 건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요즘은 정말 그 인복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는 중입니다.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리뷰를 써주고 이미 읽은 책을 여러 권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한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요.


저랑 북토크를 약속하셨던 전국의 작은 서점과 책방 사장님들, 부디 저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코로나 19가 좀 잠잠해지면 마스크 쓰고 찾아가겠습니다. 불러만 주신다면 어디든 못 가겠습니까. 가서 직접 독자분들 만나 뵙고 저자 싸인도 정성껏 해드리고 싶습니다. 제 후배가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여태까지 본 선배의 모습 중 요즘이 제일 행복해 보여."라고 하더군요. 저는 "맞아. 행복해. 물론 심란한 일도 많지만 그래도 지금 제일 행복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행복의 대부분은 책을 읽어주고 응원해 주신 분들 덕분이지요.


여기까지 쓰고 있는데 아내가 크게 한숨을 내쉬길래 쳐다보니 유자청을 만드느라 유자 열매를 썰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아침부터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달려가서 "여보, 나는 당신이 일 하다가 쓰러지는 건 보고 싶지 않아."라고 말했지만 아내는 칼질을 멈추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좀 쉬었다 하라고 해도, 잠깐 쉬면서 TV라도 좀 보라고 해도 전혀 말을 듣지 않습니다. TV는 너무 재미가 없어서 안 보겠답니다. 그리고 썰던 유자청을 마저 썰어야 한답니다. 아내를 뜯어말리고 일 대신 '북토크'를 하고 싶습니다. 물론 아내는 콧방귀 뀌며 유자청을 택하겠지만 말입니다. 북토크가 유자청과 싸우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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