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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08. 2020

대놓고 해보는 떡 이야기

압구정 달떡집이라고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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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이라는 아트디렉터가 있었습니다. 해마다 시월이면 전국에 울려 퍼지는 추억의 가요 '잊혀진 계절'의 가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입니다. 이 분은 광고대행사 시절 뛰어난 아이디어와 디자인적 감각은 물론 재미있는 입담으로도 이름아 높았는데 특히 Y담을 잘 구사해서 동료들은 그를 두고 이런 말을 하곤 했지요. "저 사람은 참 떡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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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드디어 압구정동에 떡집을 냈습니다. Y담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진짜 떡집 '압구정 달떡집'을 낸 것입니다. 압구정 달떡집은 이용 씨의 부인인 김은희 씨가 1년 정도 고심해서 계획하고 준비한 야심 찬 떡집입니다. 기존 인절미는 쌀가루를 기계에 넣고 치는 펀칭 방식이고 이 집은 찹쌀밥을 지어 돌절구에 넣고 찧는 방식이라 예전의 떡 맛이 납니다. 유화제나 기타 다른 첨가물이 들어있지 않아서 시간이 나면 살짝 식감이 단단해지는 느낌이 나지만 전자레인지에 넣고 5초만 돌려도 원래 식감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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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씨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하다가 꽃도 배우고 푸드 스타일리스트로도 일을 했던 다재다능한 사람입니다. 그 뒤로도 요리, 커피, 와인, 맥주 등등을 배우고 즐기고 하다가 몇 년 전부터 떡집에서 일을 하며 떡을 배웠지요. 가게에서 떡을 만드는 분은 이용 씨의 고등학교 동창인데 동양화를 전공한 사람이라 미적 감각이 탁월하다고 합니다. 떡집 사장님도 미대를 나왔고 떡을 만드는 사람, 제 친구 이용 씨까지 모두 미대를 나왔으니 이 집 떡은 맛은 물론이고 모양까지 참 예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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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희 집 성북동 소행성에서는 작은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저와 어렸을 적 친구였던 영화감독이 '전직 연예인과 시트콤 작가, 한의사,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독서모임이 하나 있는데 이번 달에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놓고 북토크를 진행할 예정이니 모임 장소로 성북동 소행성을 좀 빌려주고 음식도 부탁한다'라고 하며 적지 않은 회비를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마트에 가서 소고기와 야채, 새우 등 식재료를 샀고 저는 압구정 달떡집에 전화를 넣어 약간의 떡을 주문했습니다.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사실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절미 베이스인 떡집이라 이북식 인절미를 보내 달라고 했는데 편의점 택배를 이용하면 아침에 만들어서 서너 시간 만에 배달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오후 3시쯤 제가  마요네즈를 사러 동네 마트에 간 사이에 떡이 도착했더군요. 이용 사장님은 제가 주문한 인절미는 물론 맛만 보라고 하며 흑임자와 쑥굴레도 보내주었습니다. 떡은 쫄깃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맛이 났습니다. 오후 6시경 조금 일찍 도착한 독서클럽 회원들에게 떡을 내놓으니 모두 맛있다고 감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압구정 달떡집이라는 곳을 기억하라고 말했습니다. 압구정동에 떡으로 유명한 곳이 많은데 그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려면 맛있고 특색이 있어야 하기에 선택한 게 돌절구 인절미라는 설명도 해줬습니다. 졸지에 저도 떡집 홍보대사가 된 기분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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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하루 종일 주방에 서서 식재료를 손질했고 손님들이 오기 시작하자 식전주로 산 스파클링 와인과 함께 샐러드, 육전을 먼저 내왔습니다. 사람들은 육전과 함께 먹는 총각김치의 시원한 맛에 반했습니다. 곧 독서회 멤버들이 속속 도착했고 성북동 소행성의 마루 테이블 위에는 막걸리와 와인, 소주 등 그들이 가져온 술병들이 난무하는 것이었습니다. 와인을 마시는 아내, 막걸리를 마시는 영화감독, 소주를 마시는 저까지 술 취향은 각자 달랐지만 김장김치와 백김치를 베이스로 뷰야배스, 육전, 황태포까지 차례차례 모든 안주를 즐기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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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이 가져온 책에 저자 싸인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 독서모임이 책에는 관심이 없고 결국 술을 마시기 위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친구인 영화감독은 막걸리를 따르며 "사실 내가 하고 있는 술 모임 '알맹이(알콜연맹)'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책에 나오는 저와 제 아내의 연애담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의 대사들 얘기까지 쏟아지는 수다로 한밤중까지 이어졌던 독서모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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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이야기로 시작해 결국 술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되었군요. 오늘도 저는 동네 고등학교에서 하는 방역 아르바이트를 위해 일찍 일어났습니다. 전날 너무 늦게까지 술을 마셔서 정말 괴로웠고 알람을 오후 6시로 맞춰놓는 실수를 저질러 늦게 일어나 허둥댔지만 7시 이전에 도착했습니다. 서둘러 나가다가 골목을 청소하는 편의점 사장님께 인사를 했더니 어디 가냐고 물어서 "고등학교 방역 알바 가요!"라고 대답을 했는데 알아들으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지금 성북동 소행성의 술과 안주를 드릴 수는 없지만 압구정 달떡집의 인절미는 소개해 드릴 수 있습니다. 직접 찾아가시거나 전화로 주문을 해서 맛을 보시면 왜 수많은 아이템 중에서 하필 떡을 선택했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성북동 독서모임도 총각김치와 부야베스도 결국은 다 맥거핀에 지나지 않았고 오늘 드리고 싶은 얘기는 압구정 달떡집입니다. 압구정동에서 만든 떡 한 번 드셔 보십시오. 정직한 사람들이 착한 마음으로 만든 돌절구 인절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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