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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28. 2020

섹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에서 삭제되었던 19금 이야기들  

책 제목은 출판사에서 기획 회의를 하는 중간에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내와 내가 요즘 사람들이 뭐하는 분들이냐고 물을 때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라며 웃고 다닌다고 했더니 몽스북 안지선 대표가 그 문장이 제목 감이라고 해서 단박에 그렇게 정해진 것이다. 문제는 최종 원고가 나온 뒤였다. 내가 고심을 거듭해 수정하고 정리한 원고를 읽어본 출판사 사장님이 전화를 해서 "작가님, 글은 다 좋고 너무 잘 읽히는데요, 몇 부분만 고치면 안 될까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쓴 이야기 중 '섹파'라는 제목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여성 독자들이 책을 집었다가 다시 놓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별로 야하지도 않은데. 에이, 설마 그까짓 소제목 하나로 독자들이 떨어져 나갈까요. 그런데 자고 일어나 생각해 보니 나도 슬슬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혹시 모르는 일 아닌가. 그 제목을 고집해서 독자들을 쫓아버린다면 나 자신은 물론 출판사에게도 못할 짓을 저지르는 것이었다.  

결국 사장님에게 섹파의 대안이 될 만한 제목 세 개를 써서 보내드렸더니 그중 고른 것이 가장 점잖은 <아내와의 비밀 협약>이었다. 안 대표는 내친김에 <아내와 지방 호텔들을 전전하다> 편에 등장하는 'X 지'라는 비속어도 '고추'로 바꾸자고 제안했고 이미 기선을 제압당한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서 책은 야한 내용들을 자진 삭제한 채 전국의 서점에 깔렸다. 오늘 안지선 대표가 내 책의 팬을 자처하는 분들과 점심을 먹었는데 '이 책에 뭔가 19금 내용이 더 있었을 것 같다'라고 하길래 눈치가 빠른 분들이라고 감탄했다는 얘기를 듣고 문득 해보는 생각이다. 그때 내가 출판사 사장님 말을 안 듣고 섹파를 그대로 남겨 두었다면 책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말 사람들은 왜 이렇게 건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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