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하던 날의 추억
2월 13일.
오늘은
아내와 내가
혼인신고를 한 날.
간첩신고
간통신고
폭행신고보다는
백 배 더 아름다웠던
8년 전의
혼인신고.
늦은 나이에 만나 이미 동거를 하고 있던 아내와 저는 결혼식은 안 올리고 살아도 괜찮다는 쪽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가 결혼식을 너무 보고 싶어 하셔서 뒤늦게 날짜를 잡았죠. 마흔이 넘은 막내아들이 뒤늦게 장가간다고 그렇게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겨울에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결국 결혼식은 보지 못하셨습니다. 해가 바뀌고 2월의 어느 날, 아내가 갑자기 "혼인신고나 먼저 할까?" 하는 바람에 아침을 먹고 바로 구청을 향했습니다. 발렌타인데이 전날인 2월 13일이라 날짜가 잘 기억납니다. 날이 몹시 추워서 저는 아주 두꺼운 파카를 입었고 아내는 어머니가 물려주신 낡은 밍크코트와 밍크털모자를 쓰고 갔었죠. 당시엔 성수동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으므로 왕십리에 있는 성동구청으로 가야 했습니다.
신고서를 작성해서 냈더니 구청 직원께서 요즘 "혼인신고 하시는 구민들을 위한 구청의 특별 서비스로 커플 사진 찍어드려요." 라면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한 장 찍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깔깔거리며 포즈를 취하고 펜을 빌려 막 뽑아져 나온 사진 위에 "성준, 혜자. 잘살아보세!!"라는 유치한 글씨까지 써넣었습니다. 간첩신고 간통신고 폭행신고보다 백 배는 더 아름다웠던 8년 전의 혼인신고. 그해 5월에 저희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냉장고 위에 늘 붙어 있던 그 폴라로이드 사진은 작년에 한옥으로 이사를 오면서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인생이 흐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