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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11. 2021

책보다 서점이 더 예뻐야 하는 이유

- 권희진의『꽃서점 1일차입니다』

3년 전, 다니던 회사가 잠깐 사정이 안 좋아져 전 직원이 돌아가며 무급 휴가를 쓰기로 했던 적이 있었다. 노는 거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내가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어 휴가를 신청했고 그 결과 11월 한 달간은 아무 일도 안 하며 집에서 팡팡 놀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서울의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가 아이디어를 내고 제주의 디어마이블루 권희진 대표가 맞장구를 친 '제주도 책방순례 및 북콘서트 여행'이었다. 나는 아내의 허락을 얻은 뒤 「방랑강기 - 제주유랑단」이라는 이상한 이름의 2박 3일 여행단에 합류해 '디어 마이 블루 - 무명서점 - 달리책방' 순으로 제주도에 있는 독립서점들을 돌아다녔고 그때  권희진 대표도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마침 디어마이블루 1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김탁환 작가의  『살아야겠다』 북토크에 참석했다가 행성B의 림태주 대표와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림 대표는 권희진 대표의 예전 직장 상사라서 제주도까지 특별한 걸음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림태주 시인이야 워낙 글을 잘 쓰고 유명한 분이니까 내가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만 그분도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알아볼 줄은 정말 몰랐다. 당황한 나는 급히 디어마이블루로 뛰어 들어가 『관계의 물리학』이라는 책을 산 뒤 림태주 대표에게 저자 사인을 요청함으로써 겨우 체면치레를 할 수 있었다. 그때 같이 샀던 책이 진민영의  『내향인입니다』라는 작은 에세이였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작가에게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매일 떠들썩한 파티를 하고 놀이공원과 축제를 분기별로 참가해야만 즐겁고 다채로운 인생을 보내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 책은  그 후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 중 하나가 되었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디어마이블루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의 생각은 권희진 대표의 첫 책  『꽃서점 1일차입니다』 를 읽으면서 명확한 사실로 판명되었다. 권 대표가 쓴 대로 책이라는 건 정말 알 수 없어서 누군가에겐 인생책이지만 누군가에겐 재미없는 책일 수도 있고, 또 읽는 사람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거나 심지어 책을 고를 당시의 상황과 기분 등에 따라 운명이 갈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책이 내 눈에 띄고 또 내 마음으로 들어온 건 '디어마이블루'라는 꽃서점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것 아닌가. 권희진 대표는 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제주도로 내려와 꽃과 책을 함께 팔 생각을 했을까. 그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디어마이블루'라는 이름을 걸고 지냈던 서교동에서의 꽃공방 이야기부터 해야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주도에 대형서점이 없고 관광객들은 무언가를 소비하는 데 있어서 한껏 열린 자세일 거'라는 권 대표의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서점 사업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뜻있는 일들이 처음부터 완벽한 계획을 가지지 않고 시작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디어마이블루 역시 그랬다. 대신 뭐든 시작하고 나면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하고 아이디어도 잘 내는 권희진 대표의 성격이 사업 버티기의 중추를 담당했다.


동네서점에서는 책만 팔지 않는다. 손님들도 마찬가지로 책만 살 생각이라면 인터넷 서점으로 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동네서점과 손님을 묶어주는 것일까. 권희진 대표는 책과 커피를 함께  팔라는 주변 사람들의 충고를 뿌리치고 "음료는 판매하지 않지만 외부 음료 반입은 가능합니다."라고 말하기로 작정을 한다. 책과 커피를 함께 파는 북카페 대신 독립서점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신 이 서점에서 산 책은 언제든지 들고 들어와 읽을 수 있도록 테이블과 의자를 개방했다.("그럼 전 디어마이블루 평생 이용권을 구입한 셈이군요.") 그리고 컨테이너 책방 밖의 야외 잔디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다가 방수 매트와 원터치 텐트, 방석 등을 마련했다. 그러자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이 작은 공간에 놀러 와서 책을 읽고 낮잠을 자고 갔다. '피크닉서점'이라는 별명은 그래서 얻게 되었다.


나는 『내향인입니다』라는 책을  하필 여기서 사게 되었을까 다시 묻는다. 디어마이블루에 있는 200종의 책은 모두 권희진 대표가 직접 고른 것들이다. 출판사에 반품하는  너무 미안해서  200종만 판매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대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책들을  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엄선한  책들이 다른 곳이 아닌 여기서 팔렸으면 하는 주인의 간절한 마음이, 이곳에서 추천한 책은 왠지  재밌고  취향일  같다는 손님의 마음과 만났을  책은 기적적으로  주인을 찾아간다. '책보다 서점이  예뻐야 하는 이유' 여기에 있다. 그리고 디어마이블루는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좋을 만큼 예쁘다. 『꽃서점 1일차입니다』에는 동네서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실무 이야기도 있지만 결국 이처럼 간절하고 갸륵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물론 서점에 와서 책은 사지 않고 기념사진만 찍고 가는 얌체족들을 비난하는 까칠한 글도 있다. 그러나  대표의 이런 까칠함도 결국 '고양이의 솜방망이 펀치처럼 세상을 향해 힘껏 날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도전' 불과하다. 그러고 보니 진민영의 책에도 고양이가 등장하고 출판사 이름도 책읽는고양이다.  책이 나온 곳도 냥이문고이고 표지에 고양이가 등장하는데. 요즘 들어  부쩍 고양이와 책들이 덤비는 형국이다. 순자야(우리  고양이 이름이 순자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인연이 시작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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