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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08. 2021

앉으나 서나 의자만 생각하는 교수의 책

김진우의 『앉지 마세요 앉으세요』

홍익대 동아리 뚜라미 1년 후배인 김진우에게서 카톡 문자가 왔다. "선배, 제가 책을 내게 되었는데 처음엔 '나는 의자가 사람 같다'라는 단서로 쓰기 시작했어요......" 학창 시절에 작사 작곡도 잘하고 요들송까지 불렀던 그녀는 충주에 있는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미술대학에서 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인데 평소에도 가구와 의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고 특히 의자에 대한 칼럼을 지역신문에 정기적으로 쓰고 있는 의자 마니아였다. 그런데 이번엔 의자를 주제로 책을 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당연하고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책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카피라이터였던 나에게서 제목에 대한 통찰을  얻고 싶다는  카톡 메시지의 요지였다. 그녀 덕분에 나도 이틀 정도 의자 생각에  빠져 있다가 '의자가  사람이다' '의자, 앉자, 놀자' 같은 점잖은 제목부터 시작해 '님아,  의자에 앉지 마오' '전생에 의자왕이셨어요?' 같은 패러디 문장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제시하며 키들키들 웃었다. 그러나  제목이 쉬운  같아도 결정하기까지는 몹시 어려운 분야라 쉽게 결론이 나진 않았다.  후로도    엎치락뒤치락 제목이 바뀌었다고 들었는데 다음  봄에 드디어 그녀에게서 소식이 왔다. 안그라픽스에서 책이 나왔고 제목은 '앉지 마세요 앉으세요' 정해졌다는 것이다. 당장에 어떤 의자의 그림이 떠올랐다. 이건 세상엔 앉으라는 의자도 있고 그냥 예술품으로만 존재하는 의자도 있다는 뜻이로구나. 제목  지었네. 덴마크에서 유학을 하며 세계 최고의 장인들이 만든 의자 디자인들을 섭렵한 그녀에게  어울리는 제목이었다. 아내와 나는 대학로 동양서림에 가서  책을 샀다.


어떤 사람은 술이나 음식으로 세상을 보고 또 어떤 이는 여행에 기대서 인생을 말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김진우에게 인생 화두는 단연 의자다. 그래서 앉으나 서나 의자만 생각하는 그녀가 의자에 대한 책을 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디자이너에게서 듣는 스물여섯 가지 의자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처음엔 가구에 대한 이야기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원고를 진행해갈수록 가구라는 넓은 스펙트럼보다는 의자라는 하나의 소재에만 집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노련한 기획자와 참신한 작가가 만났으니 좋은 책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엔 세계적으로 이름난 '레더 백 체어'부터 우리나라 윤호섭 교수의 작품까지 수많은 의자들이 나오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첫 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되고 신중한 김진우의 문장들이다. 그녀는 글을 통해 의자에 생명을 불어넣을 줄 아는 작가다. 어떤 의자는 주인공을 자처하고 어떤 작품은 마른 남자처럼 까칠하다. 그런가 하면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다가가 쉽게 질리지 않는 의자도 있다. 김진우는 한 발 더 나아가 자연에서 만난 바위도 친근한 벤치로 생각하고 수해복구 봉사활동에서 만났던 플라스틱 박스를 최고의 의자로 칠 줄 아는 친근함까지 겸비했다.


『앉으세요 앉지 마세요』는 의자에 대한 책이 분명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의자 너머에 있는 사람과 세상이 보이고 디자인의 쓰임새와 소명의식 같은 인문학적 주제들로 확장된다. 가히 생활 속 사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 있는 글쓰기의 한 예로 남을 것 같다. 강추한다. 전국의 도서관에도 한 권씩 꽂혀있기를 바란다. 이런 책이 많이 읽힐수록 좋은 시민들이 많은 사회가 될 것이라 확신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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