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도윤의 『웹소설 작가 1일차입니다』
나는 웹소설을 모른다.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종이책이나 전자책으로도 읽을 책이 널려 있는데 굳이 '웹소설'이라는 장르까지 새로 알아서 뭐하겠느냐는 게 나의 입장이었다. 게다가 웹소설이라고 하면 왠지 예전에 읽던 무협지나 하이틴 로맨스처럼 이야기의 전형성만 존재하고 문학성은 전혀 없는, 클리셰로 범벅이 된 글이라는 선입견이 좀 있었다. 그러던 중에 허도윤이라는 웹소설 작가의 입문기를 읽게 되었다. 웹소설 작가의 글을 웹이 아닌 종이책으로 읽게 되었네, 라며 가볍게 책 속으로 들어갔던 나는 웹소설도 가독성이 기본임은 물론이고 성실한 취재와 치밀한 구성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문장력이 없으면 손도 댈 수 없는 장르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숙이며 나와야 했다.
웹소설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던 허도윤이 이 장르를 만나게 된 것은 지독한 우울 덕분이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어두컴컴한 방 안에 웅크린 자세로 앉아 조그만 휴대폰 액정에 비친 활자를 술술 넘기던 허도윤은 어느덧 자신이 이 글 덕분에 우울증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이는 속이 아프기 싫다는 이유로 쌀밥을 구운 김에 싸서 먹는(나는 이렇게 구체적인 표현이 좋다) 것만큼이나 애처롭고도 혁명적인 일이었는데 허도윤은 읽는 것을 넘어 자신이 직접 웹소설을 써볼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웹소설 작가 1일차입니다'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웃었다. 일단 작가의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문장력이 좋다. 그리고 의외로(?) 인문학적 소양까지 깊다. 나는 '클리셰'라는 단어가 금속활자 발명 직후 유럽의 인쇄공들 사이에서 생겨난 말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문명의 첫 신호는 부러졌던 다리가 붙은 흔적'이라고 말하며 도움이나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마거릿 미드가 역설했다는 것도 허도윤 작가 덕분에 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은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는(사실은 여성이다. 그래도 그녀는, 이라고 쓰기 싫어서) 말한다. 꼴리는 대로 써서 흐름이 불친절해지면 독자들에게 외면 당하기 십상이라고. 내가 쓰는 이야기에는 내 가치관이 스며들기 마련이고 삶을 바라보는 자세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이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내가 쓴 이야기가 꾸준히 읽히는 것은 어느 정도 내 가치관이 공감을 받았다는 반증이 된다고. 그래서 결국 글쓰기는 '내가 영 헛사는 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고.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소년은 쉽게 나이가 든다. 그러므로 인문학적 소양과 유머가 넘치는 글을 읽고 싶다면 『웹소설가 1일차입니다』를 먼저 읽으십시오, 라는 짧은 독후감을 남긴다. 잘근잘근 씹히는 스낵 같은 에세이다. 아, 이 책의 표지에 고양이가 등장하는 이유는 '고양이의 솜방망이 펀치처럼 세상을 향해 힘껏 날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도전'을 응원하는 뜻으로 〈냥이문고>라는 이름이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귀엽고 경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