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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06. 2021

잘근잘근 씹히는 스낵 같은 에세이

허도윤의 『웹소설 작가 1일차입니다』

나는 웹소설을 모른다. 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종이책이나 전자책으로도 읽을 책이 널려 있는데 굳이 '웹소설'이라는 장르까지 새로 알아서 뭐하겠느냐는 게 나의 입장이었다. 게다가 웹소설이라고 하면 왠지  예전에 읽던 무협지나 하이틴 로맨스처럼 이야기의 전형성만 존재하고 문학성은 전혀 없는, 클리셰로 범벅이 된 글이라는 선입견이 좀 있었다. 그러던 중에 허도윤이라는 웹소설 작가의 입문기를 읽게 되었다. 웹소설 작가의 글을 웹이 아닌 종이책으로 읽게 되었네, 라며 가볍게 책 속으로 들어갔던 나는 웹소설도 가독성이 기본임은 물론이고 성실한 취재와 치밀한 구성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문장력이 없으면 손도 댈 수 없는 장르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숙이며 나와야 했다.

웹소설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던 허도윤이 이 장르를 만나게 된 것은 지독한 우울 덕분이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 어두컴컴한 방 안에 웅크린 자세로 앉아 조그만 휴대폰 액정에 비친 활자를 술술 넘기던 허도윤은 어느덧 자신이 이 글 덕분에 우울증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이는 속이 아프기 싫다는 이유로 쌀밥을 구운 김에 싸서 먹는(나는 이렇게 구체적인 표현이 좋다) 것만큼이나 애처롭고도 혁명적인 일이었는데 허도윤은 읽는 것을 넘어 자신이 직접 웹소설을 써볼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웹소설 작가 1일차입니다'인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번 웃었다. 일단 작가의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문장력이 좋다. 그리고 의외로(?) 인문학적 소양까지 깊다. 나는 '클리셰'라는 단어가 금속활자 발명 직후 유럽의 인쇄공들 사이에서 생겨난 말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문명의 첫 신호는 부러졌던 다리가 붙은 흔적'이라고 말하며 도움이나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마거릿 미드가 역설했다는 것도 허도윤 작가 덕분에 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웠던 것은 글쓰기에 대한 생각이 나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는(사실은 여성이다. 그래도 그녀는, 이라고 쓰기 싫어서) 말한다. 꼴리는 대로 써서 흐름이 불친절해지면 독자들에게 외면 당하기 십상이라고. 내가 쓰는 이야기에는 내 가치관이 스며들기 마련이고 삶을 바라보는 자세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등이 나타날 수밖에 없으므로, 내가 쓴 이야기가 꾸준히 읽히는 것은 어느 정도 내 가치관이 공감을 받았다는 반증이 된다고. 그래서 결국 글쓰기는 '내가 영 헛사는 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고.

읽어야 할 책은 많고 소년은 쉽게 나이가 든다. 그러므로 인문학적 소양과 유머가 넘치는 글을 읽고 싶다면 『웹소설가 1일차입니다』를 먼저 읽으십시오, 라는 짧은 독후감을 남긴다. 잘근잘근 씹히는 스낵 같은 에세이다. 아, 이 책의 표지에 고양이가 등장하는 이유는 '고양이의 솜방망이 펀치처럼 세상을 향해 힘껏 날리는 작지만 의미 있는 도전'을 응원하는 뜻으로 〈냥이문고>라는 이름이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귀엽고 경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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