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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20. 2021

아주 사소한 유언 하나

만약 공돈 1억 원이 생긴다면

채널예스에서 만우절 특집으로 '나에게 인세 1억 원이 생긴다면?'이라는 질문을 작가들에게 던졌는데 그중에서 장강명이 낸 '재미있게 읽은 국내 소설들을 모아 무료 전자책을 발간하겠다'는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공돈이 생긴다면(개인적인 빚을 갚는다거나 하는 것은 안 되고 다소 공익적인 일에 돈을 써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붙여야 한다) 뭘 할까 생각하다가 몇 년 전 우근이와 했던 '사소한 유언 내기'를  떠올렸다.

극작가이면서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최우근은 재미있고 유머러스한 글을 쓰기로 유명한 친구인데 몇 년 전에 느닷없이 '사소한 유언을 한 번 써보자'라는 의견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미용실은 매번 다른 곳으로 다녀라'라는 유언을 남기셨다면 꽤 재밌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우리는 누가 더 특이하고 사소한 유언을 생각해 내나 내기를 하기로 했다. 나는 '후라이드 반 양념 반은 주문하지 마라' '이쑤시개는 사용하지 마라' 같은 실용적인 유언을 개발했고 같은 고등학교 동창인 상준이도 '라면 끓일 때 물을 두 숟가락 적게 넣어라' 같은 훌륭한 의견을 보탰다.

길상사에서 '머리맡에 남아 있는 책을 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해주면 고맙겠다'라고 한 법정스님의 유언을 읽고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있다. 그 유언을 전해 듣고 신문 배달하는 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제 성북동 커피숍 '일상'에서 아내와 커피를 마시다가 그 생각이 났다. 내가 법정 스님처럼 따뜻한 유언을 남기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자 하고 내 명함에 메모를 하고 있으려니 아내도 사연을 듣고는 '탕수육 부먹 하지 마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나는 '끈 없는 운동화는 사지 마라' '빨간 티셔츠는 입지 마라' 나이키를 신지 마라' 같은 자질구레한 유언을 더 생각해 내고는 공돈이 생기면 이걸 공모해서 꼭 책으로 내야지 하고 다짐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고 강력하게 싱거운 책이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이제 공돈 1억 원만 생기면 된다. 우근아, 전화할게. 돈만 생기면 바로. 우리 인세 수입은 깔끔하게 오 대 오로 나누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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