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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5. 2019

발 닦을 시간이 없다

독서에 대하여


장정일이 독서일기를 쓰던 시절, 어렸을 때의 꿈이 동사무소 다니는 것이었다고 쓴 적이 있다.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 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 그것이 꿈이었던 장정일은 중졸의 학력 때문에 동사무소 직원이 되지 못했고 결국은 시인이 되었고 소설가가 되었다.

나도 그렇게 저녁에 들어와 발 닦고 책만 읽다가 잠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늘 그렇듯 내게 협조적이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며 책을 읽을 시간은 늘 부족했다. 영화도 봐야 했고 친구도 만나야 했고 뉴스도 봐야 했으며 술도 마셔야 했다. 인터넷이 도처에 깔려 있었고 유튜브가 SNS가 넷플릭스가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세상은 배우고 알아야 할 정보로 차고 넘쳤고 급기야 모바일이 등장해 자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섹스를 하다가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봐야 했다. 도대체 발을 닦을 시간 따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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