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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Feb 27. 2022

글쓰기를 방해하는 악마들

누구나 공감할 만한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인들'에 대해

청주에 와서 처음엔 '하루 8시간 글쓰기' 목표로 세웠다. 오전에  시간, 오후에  시간. 아하, 까짓   정도면 컨디션이 따라 얼마든지    있겠는걸.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아무도 방해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시간은  모자랐고, 자주 변수가 생겼고, 무엇보다  몸은 부단히 글을  쓰고  핑계를 찾고 있었다. '졸리다' '피곤하다' 같은 증상은 주로 전날 술을 많이 마셔야만 일어나는 일이었는데 청주에서는 멀쩡한 정신에도 자주 피곤하고 졸리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처음엔 '창작의 고뇌' 때문에 그런  알았다. 그러나 며칠 지나고 나자 그보다 하찮은 이유들 때문에  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던 나는 글을 쓰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SNS 올린 글의 반응을 확인해야 했고 카카오톡이나 이메일이 오면 뭔지 읽어보고 즉시 답장을 하거나 지워야 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오후 4시 이전에는 전화나 이메일도 받지 않고 독하게 글만 쓰며 산다고 했지만 나는 가즈오 이시구로가 아니었므로 카카오톡이나 이메일이 오면 실시간으로 받고 답장을 했다. 대부분은 쓸데없는 것이거나 '네가 지금처럼 나태하게 살면 언젠가는 금전적으로 큰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포한 협박편지였다. 카드 결제일이 되면 돈이 있든 없든 괜히 불안해져 잠을 설치는 현상이 다시 일어났다. 재작년 퇴직 후 아침에 눈만 뜨면 통장 잔고가 '0원'으로 표시되던 끔찍한 경험을 몇 번 한 뒤로는 아직도 매달 25일만 되면 괜히 무섭고 심장이 쫄깃해진다.


화장지나 라면 같은 생필품이 떨어지면 나중에 사도 되지만 이상하게 바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다. '이래서 미국 사람들이 팬데믹 초기에  제일 먼저 화장지부터 샀구나' 하는 쓸데없는 글로벌 감각이 생겼다. 아무튼 이런 건 나중에 사러 가도 되는데 괜히 마음이 께름칙하고 내가 뭔가 중요한 걸 안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 신경이 쓰였다. 결국 사러 나갔다. 글쓰기에 방해가 되는 건 물론이었다.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세상 모든 나쁜 것들이 내 글쓰기를 방해하려고 모여 단합대회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란에 빠지게 되었다. 오죽하면 미국의 작가 앤 라모트는 "작가들은 세상에서 가장 하고 싶은 게 글쓰기인 주제에,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도 글쓰기라고 지껄이는 웃기는 존재들"이라고 말했을까. 오늘 소행성책쓰기 워크숍이 있어서 새벽에 일어나 김해숙 선생의 차를 얻어 타고 서울로 갔다가 다시 그 차를 타고 청주로 내려왔다. 아내는 헤어지면서 "이게 사는 거냐, 도대체."라는 과격한 말을 남겼다.


글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엉뚱한 글만 키보드로 두들기다가 이내 지쳐 버렸다. 세상엔 글쓰기를 방해하는 악마들이 너무 많다. 문제는 걔네들이 다 나의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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