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지만 공감 가는 다카하시 씨의 얘기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로 살펴보는 글쓰기의 본질

by 편성준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에서 다카하시 겐이치로는 에리히 캐스트너의 글을 빌려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이나 기억이라는 것은 '흠씬 두들겨 맞은 개 같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매우 잔인하지만, 공감이 가는 얘기입니다. '얻어맞은 개'는 몹시 겁에 질려 있기 때문에 누군가 사랑해주려는 마음으로 다가가도 냅다 도망을 가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는 '떠오른 생각이나 기억'이라는 것이 바로 소설이고(다카하시 씨는 소설가니까) 동시에 소설의 영혼 같은 것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영혼이기 때문에 당신이 의욕에 가득 차서 다가가려 하거나 콧김만 닿아도 어디론가 휘익 날아가 버린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겁 많은 개를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요? 잡으려 하지 말고 곁에서 같이 놀아 주어야 한다고 다카하시 씨는 말합니다. 당신이 아무리 소설을(다카하시 씨는 소설가니까) 사랑하고 소설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해도 역시 소설은 당신을 보고 도망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지 말고 그냥 같이 놀기부터 해야 한다는 거죠. 다카하시 씨는 이런 얘기를 하다가 어떤 깨달음이 왔나 봅니다. 인간이 무언가를 할 때는, 그것이 중요한 문제일수록 항상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이건 중요한 일이다, 꼭 해야 한다, 내 모든 걸 걸고!"라고 의욕을 보이면 보일수록 소설도(만일 당신이 소설 쓰기를 원한다면), 시도(시 쓰기를 원한다면), 여자도(물론 남자도), 꿈도(수많은 꿈들), 돈이나 지위도(이건 잘 모르겠지만) 당신에게서 도망쳐 버립니다."

저는 어떻게 하고 있나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행히 저는 놀고 있더군요. '청주에 내려와서 필생의 역작을 쓸 거야!'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습니다. 물론 뭔가 써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고, 또 뭔가를 매일 쓰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놀고 있습니다. 잘 써지면 쓰고 안 써지면 내일로 미루며 놀고 있습니다. 물론 아내에게는 정기적으로 "잘 쓰고 있다"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잘 놀고 있다'라고 하면 불안해할 테니까요. 뭐, 그러나 아내도 제가 놀면서 쓰기를 원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야 개가 도망을 안 갈 테니까요. 그 정도는 아는 기획자입니다.

『연필로 고래 잡는 글쓰기』는 예전에 진주문고에 북토크하러 갔을 때 이병진 팀장이 추천해 준 책입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떠오른 좋은 생각이나 기억을 붙잡으려 하지 말고 같이 놀아달라'는 얘기를 에리히 캐스트너 씨와 다카하시 겐이치로 씨, 이병진 팀장, 그리고 저까지 총 네 명의 남자가 외치고 있는 겁니다(아, 외치면 안 되겠군요. 개들이 도망을 칠 테니까). 이 정도면 진심 어린 충고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까지 쓰고 나니 제가 좋아하는 최동훈 감독의 《타짜》도 생각이 나는군요. 영화에서 평경장은 고니에게 묻죠. "돈을 원하니? 부자가 되고 싶니?" 그리고 화투 두 장을 군용 담요 위에 내려치며 말합니다. "이거이 니 정주영이고, 이병철이야!"(저는 이 대사 참 명대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고니는 평경장에게 화투 기술을 배우죠. 그러나 돈이나 화투에 목숨까지 걸진 않고 그냥 즐깁니다. 그래서 고니는 훌륭한 타짜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모두 훌륭한 타짜가 됩시다....... 결론이 몹시 이상하군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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