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짧은 손톱

2024.03

by 망고수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증거가 손톱 모양에 있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손톱을 물어뜯던 버릇은 시간이 지나니 사라졌다. 그렇지만 마음이 산란할 때 틱. 틱 하면서 굳이 손톱 틈을 찾아내고 괴롭히다 결국은 부러뜨리고 마는 게 요즘의 나쁜 습관이다. 마음이 안정적이면 내 손톱도 깔끔한 라운드 모양인데, 그렇지 않으면 부채꼴스럽게 둔탁해진다.


손톱에 신경 쓸 겨를이 없으니 모양을 다듬고 늘 바르는 핑크색 영양제로 반짝거리게 만드는 과정도 힘겹다. 콤플렉스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반지를 잘 안 낀다. 불편하기도 하고. 그 관심은 온전히 목걸이에게로 돌아간 것 같다. 심심하면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다. 메이크업도, 옷도 뭐 하나 화려해지면 모조리 뱉어내는 탓에 심플함에 포인트 하나 주는 걸로 스스로 합의를 봤다.


제일 잘 차는 목걸이의 펜던트가 지난주에 떨어졌다. 세심하게 목걸이 고리를 열어 여유롭게 찰 시간 따위는 없는 출근 시간, 무사히 경의중앙선에 타서 열심히 꼬인 줄을 풀다가 맥없이 펜던트 하나가 빠져 발 틈으로 굴러가더라. 내 속도 모르고!!! 사람이 많으니 고개를 숙여 살펴도 안 보였다. 옆에 계신 분도 눈치채셨는지 눈을 굴려 도와주셨지만 못 찾았다.


사람이 우르르 빠지는 왕십리역, 기어이 펜던트를 찾아냈다. 그냥 새로 살까 했는데 하루를 망치기는 싫어서. 빠르게 바닥에서 주워다가 문이 닫히기 전에 내렸다. 사실 집 앞에 오는 마을버스를 타려다 문이 닫혀서 열심히 두드리기까지 했는데, 무안하게도 버스가 쌩- 하고 갔을 때부터 하루의 시작이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무사히 지하철을 탔고, 펜던트는 다시 끼울 수 있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맘을 다독였다.





마음이 붕 떠있다. 일정도 자꾸 놓치고 집중력도 그닥이다. 글 쓰는 것도, 기획하는 것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다 좋은데 심심하다. 남은 일정이 너무도 뻔해서 질린 것도 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정신없이 지내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 보고 싶어서 잡은 약속, 읽고 싶어서 사둔 책, 건강해지려고 하는 필라테스. 예측 가능한 일상이 싫지만 예측 불가능한 이슈가 무섭다.


금요일 퇴근 전에는 예약해둔 필라테스를 과감히 취소하고, 교보문고에 가 책을 구경했다. 팀플, 학회 등 함께하는 일이 많은 나는 일정을 쉽게 조정할 수 있는 ‘혼자만의 약속’에 관대한 편이었다. 약간이라도 변주를 주고 싶어서 이전 약속(필라테스)을 깨고 새로운 약속(교보문고)을 선택했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연락해 검증된 리스트를 훔쳐 왔고, 그중 하나를 골라 반 정도 읽었다. 시간이 늦어 얼른 집으로 돌아가 남은 일을 처리했다.


지금 손톱 모양은 맘에 들지 않는다. 어제는 불안해서 손톱을 세게 건드렸더니 생각보다 깊이 찢어져 아팠다. 오늘은 짧긴 해도 아프진 않았다. 손톱이 자라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언제까지 못생겼다고 짜증 부릴 수 없으니. 단정하게 다듬고 찢어지지 말라고 영양제도 좀 발라둬야겠다. 해가 갈수록 다가오는 한 주를 기대하는 마음이 옅어지는데, 이번 주는 꽤 잘 지내보고 싶다. 늘 바라건대 큰 타격은 없지만 적당히 새롭고 활기를 불어넣는 일이 있으면 좋겠다. 오늘 밤 뜬금없이 걸려온 전화가 되게 재밌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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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를 부른 햇빛 어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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