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나이트클럽에서 처음 만나고 빨리 다시 만나고 싶었다.
난 그 여자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너무나 바쁜 그 사람은 통화를 길게 할 시간도 없고, 만날 시간도 없었다.
연애 초반에 몽글한 감정이 올라올 때는 자주 만나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그녀는 바빴다.
그 당시 그녀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게다가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있었다.
그런 바쁜 와중에 나이트클럽에 와서 춤을 추다니.. 스트레스를 춤으로 푸는 건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체력이 엄청났다.
달리기도 빠르고 특히 배드민턴 칠 때면 다람쥐처럼 이리저리 잘도 뛰어다녔다.
나 >> 푸른색
여자친구 >> 붉은색
첫 만남 후 1주일이 지나서야 2번째 만남을 가졌다.
“ 아니 그렇게 바빠서 연애는 어떻게 한데요?”
“ 바빠서 싫으면 마는 거죠.”
“ 멋지네요. 평일에는 보통 일정이 어떻게 돼요?”
“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출근하고 중간에 목요일 하루 쉬는데 그날은 대학교로 강의하러 가요. 퇴근하고는 보통 대학원 공부해야 하고요. 힘들어요”
‘ 이 여자를 만나야 하나… 아니 내가 싫은 건가? 저게 말이 되나’
“아 그럼 우린 언제 또 봐요?”
“음.. 일요일에 보면 되죠.”
“아니 1주일에 한번 봐서 사람이 좋아집니까? 그러다가 흐지부지 되는 거예요. 아! 됐고, 몇 시에 퇴근해요?”
“7시요.”
“어지간하면 7시에 회사 앞으로 갈 테니까 30분만 매일 봅시다.”
“네? 매일요?”
멋지다. 난 그런 남자였다.
뭐 한 1주일 정도부터는 너무 힘들어서 조금씩 후회하기 시작했지만, 아무튼 멋졌다.
거의 매일을 대전 안영 IC로 들어가서 대전 IC로 나가는 고속도로를 타고 왕복 50km를 달려 그녀의 회사 앞으로 가 그녀를 기다렸다.
단지 얼굴 한번 보러, 손만 한번 잡으려고 매일같이 그녀를 찾아갔다.
가끔 연락도 없이 1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럴 때는 화도 나고 짜증도 났지만 저 멀리서 미안해하며 다가오는 아내를 보면 그런 감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만큼 좋았다.
착하고 똑똑하고 예쁘고 빠지는 것 하나 없는 여자였다.
그때 내 나이가 34살, 아내의 나이가 27살이었다.
만난 지 2달 후, 나는 혼자 결혼을 결심했다.
그렇다. 그냥 나 혼자 결혼을 결심했다.
그때 내 하나뿐인 남동생은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고, 아버지의 퇴임이 2년 정도 남은 시기였다. 그래서 부모님이 결혼을 닦달했냐고? 아니다.
정반대였다.
결혼을 하든지 말든지 반포기 상태였다.
실제로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연애에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했고, 사업을 시작한 지 2년이 조금 넘은 시기라서 일에 집중을 했던 시기였다.
27살에다가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는 그 여자는 당연히 결혼 생각이 없었고, 처갓집에서도 시집을 보낼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저 여자가 결혼에 대해 생각하려면 박사과정도 끝나야 할 테고, 그 후에도 확실하지 않다.’ 그럼 적어도 3년 이상은 걸리겠는데…’
‘그럼 난 30 후반이 될 거고… 너무 나이가 많아지는데…’
‘그리고 일단 난 지금 결혼이 하고 싶은데?’
곰곰이 생각을 했다.
도박을 하자! 운명에 맡기는 거다!
“자기야 나 할 말 있어. 결혼하자!”
“???”
“ 내 생각은 그래. 연애를 꼭 길게 해야만 결혼을 하는 건 아니잖아. 우리가 만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난 너랑 결혼을 하고 싶어. 난 네가 마지막이야.”
“어 그래.. 뭐 아직 우리 만난 지 2달밖에 안되었으니까, 언젠가는 하겠지.”
“그래서 말이야. 사실 우리 아버지가 2년 있으면 퇴임이거든. 그때까지 결혼 못하면 그냥 이민 가려고.”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나랑 올해 결혼 안 할 거면 그냥 헤어지자.
내가 한 말이다. 여자 친구가 아닌…
‘뭐지? 이 미친놈은??’
“그러니까 지금 결혼하자고 프러포즈하는 거냐? 올해 결혼 안 할 거면 헤어지자고 하면서?”
“어?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건가? 헤헤”
“웃어? 웃겨 이게? 오빠!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건데? 헤어질 거야?
이게 아닌가? 아니다.
이건 일생일대의 도박이다. 원래 결혼은 한쪽이 밀어붙이지 않으면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많다고 들었다.
내가 생각이 짧았던 건가?
여하튼 내 생각보다 너무 화를 내는 것 같아서 조금 고민을 했다. 이 짧은 몇 초동안 노선을 살짝 틀어야 하나 생각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냥 밀어붙이기로 결정했다.
“아까 말했잖아. 못 들었어? 헤어져야지… 근데 너도 나 좋잖아? 맞지? 왜 안 좋은 쪽으로만 생각해?”
“공부 때문에 그래? 공부는 결혼하고도 할 수 있지! 너 학비도 다 네가 벌어서 하잖아. 그것도 내가 다 책임질게! 오빠 못 믿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나도 오빠 좋긴 하지. 근데 결혼을 나 혼자 하나? 우리 부모님은 전혀 생각도 안 하고 있을 건데..”
“한번 말이라도 해봐. 내가 그랬다고 그래. 이만저만한 상황이라 빨리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그리고 안 된다고 하시면 그때 나한테 말해. 내가 알아서 할게.”
“?? 일단 알겠어.”
약간의 가스 라이팅을 시전 했던 것 같다. 일단 1단계는 통과를 했다. 2단계로 그녀의 부모님을 설득해야 하는데.
예상했던 대로 아내의 부모님은 말도 안 된다고 완강히 반대를 하셨다. 사실 반대라기보다 결혼하기는 너무 이르다 라는 의견이었다.
예상했던 대로다. 아내에게 했던 것처럼 억지를 부리기로 했다.
여자 친구 부모님과의 식사 약속을 잡았다.
“ 처음 뵙겠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역시나 뜨뜻미지근한 반응.
식사를 어느 정도 마치고 본론을 이야기했다.
“아버님, 어머님. 제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뭐지 이놈은?’
“혹시 마음에 안 드신다면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십니까?”
“ 전해 듣기로는 제가 직장인이 아니라 사업을 해서 조금 걱정된다 말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버님 저 돈 많이 법니다. 우리 @.@씨 박사 만들고! 교수 만들고! 으이! 제가 다 하겠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지금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
여자 친구의 부모님과 여자 친구 모두 아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냥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알았네. 알았어. 일단 반가웠네.”
여자 친구 아버님의 씁쓸한 표정을 보니 느낌이 싸하다.
후일담으로 장인어른은 절대로 저런 놈이랑 결혼을 시킬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이미 결혼을 하고 벌써 8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옆에서 보고 있는 아내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다.
(장인어른.. 지금까지 그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그 정도였다고?)
그 후로 자신감이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몇 번씩 인사도 드리고 동반 여행도 가고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 한 곳에서 다시 자신감이 상승했다.
지금은 결혼해서 예쁜 딸을 키우고 있는 처남이 당시에는 워홀 비자로 호주에 가있었다.
첫 통화에서
“매형! 전 매형 편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누나 데러 가신다고 해서. 파이팅입니다. 뭐 아버지가 반대하는 건 아시잖아요! 딸 가진 어떤 아버지가 옳다구나 하고 결혼하라 하겠어요! ”
얼굴도 모르는 처남은 날 응원해줬다. 힘이 난다!
이미 나는 유부남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타스틱한 결론은 없다. 결국은 여자 친구 부모님께 결혼을 허락받았다.
만난 지 2개월 만에 결혼을 결심했다.
그리고 3개월 후 결혼을 허락받았다.
우린 지금 결혼 8년 차이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그것은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