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고아미고 Nov 23. 2022

프러포즈를 하고 싶다.

어떻게 하지?

여자 친구와 처음 만난 그해 여름.


여름휴가가 다가왔다.

1년에 한 번뿐인 여름휴가다. 여행을 워낙 좋아하는 나에게는 1년 중에 가장 큰 이벤트이다.

사실 여름휴가를 기다려온 건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

프러포즈다.

프러포즈를 할 계획이었던 것.

프러포즈는 처음이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어보고,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역시 같은 피가 흐르는 형제에게 물어보는 것이 나으려나?


경찰공무원인 동생, 학교 선생님인 제수씨, 이 부부에게 프러포즈를 어떻게 했냐고 물어봤다.


“형! 프러포즈는 일단 기억에 남게 하는 게 제일 중요해! 일단 와이프 학교에 양해를 구했지. 수업 중에는 예의가 아니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잠시 들어가 방해를 해도 되겠냐고 말이야.”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잠시 들어가 방해를 하는 건 예의가 있는 거냐?’


“그리고 경찰 인형탈을 쓰고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어! 그리고는 장난감 수갑을 채워서 데리고 갔지.”

“날 사랑에 빠지게 한 죄! 체포하겠다!”


‘미친놈인가?’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생 옆의 제수씨 표정은 썩어갔다.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로워 보였다.

역시 내 동생이다.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하긴 그것도 말이 되긴 해.

기억에 남는 프러포즈. 아니 적어도 프러포즈 어떻게 받았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정도는 돼야 할 것 같다.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처럼 ‘유리상자’의 ‘사랑해도 될까요’를 부를 용기는 없었다.

게다가 동생의 경험담을 들으며 제수씨의 표정을 보고 난 후  ‘절대 하면 안 되는 프러포즈’ 1위에 올려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살고 있는 원룸이나 펜션을 빌려서 둘이서 풍선 달고 프러포즈하는 것도 식상했다.


그래!

어차피 여름휴가 기간에 프러포즈를 할 계획이었으니 여행을 가자!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감정도 나를 도와줄 것이다.

어차피 프러포즈를 위한 여행이니 국내여행 말고 해외여행을 가자!


여름! 해변! 그래! 보라카이다!


몇 번 가봤던 보라카이이기도 하고, 동네가 워낙 좁아서 어리바리 헤매지도 않을 것 같고, 갈 때마다 만족스러운 여행지이기 때문에 고민 없이 보라카이로 정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예비 장인어른의 애정 어린 감시였다.


어찌 되었던 결혼 허락을 받았으니 귀가시간이나 외박과 여행, 이런 부분에서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결혼을 허락받았다고 해서 사실 바뀐 건 없다.

아니 더 힘들어졌다고 해야 하나? 아버님의 감시가 점점 더 심해졌다. 나를 만나기 전에도 귀가시간이 조금만 늦어져도 전화를 자주 하시던 예비 장인어른. 정식으로 인사드리려 가기 전에도 몇 번씩 전화가 오는 걸 옆에서 자주 목격했기에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이제 나를 만나는 걸 알고 나서부터 9시만 되면 전화를 하신다.


“딸~ 누구랑 있어?”


“나 남자 친구랑 있지”


“빨리 들어와라 지금 9시 넘었다.”


“아! 들어갈 거야. 먼저 자 아빠”


“아니. 나 너 들어올 때까지 안 잘 거야.”


항상 이런 식이다.

같이 있는 내가 더 불편해서 일찍 들여보낸다.

그런데 해외여행이라니!! 과연 갈 수 있을까?


“자기야 우리 이번 여름방학 때 보라카이로 휴가를 같이 가는 건 어떨까?”


“너무 좋아! 정말 좋아! 진짜 좋아!”


“그런데 너 갈 수는 있겠어? 아버지께 뭐라 할 건데?”


“음.. 일단 내가 알아서 할게 그건. 날짜는 언젠데? 나 휴가날짜 말해주면 되는 거야? 오빠가 다 알아서 준비하는 거야?”


“후후후. 그럼! 나한테 맡겨. 그냥 몸만 가시면 됩니다! ^^”


“알겠어!”


7월 말 가장 성수기인 기간에 비행기 예매를 하고 숙소도 큰맘 먹고 헤난 리젠시 리조트를 예약했다. 그 당시 보라카이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던 데니라는 지인에게 연락을 했다.


“형 이번에 나 보라카이 들어가! 이번에는 둘이 가는데 프러포즈하러 가는 거야”

 

“진짜야? 와아 축하해! 언제 오는데?


“7월 말! 그런데 형, 혹시 프러포즈할만한 곳 없을까?”


“야! 보라카이잖아! 그냥 해변 아무데서나 해도 되고! 선셋 세일링 할 때 해도 되고! 무슨 그런 고민을 해?”


‘맞아. 보라카이잖아. 아무데서나 하면 되지!”


그나저나 여자 친구는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을 드렸는지 궁금했다.


“ 부모님께 말씀드렸어? 여행가도 된다고 하셔? 뭐라고 하시는데?”


“어! 내가 말씀드렸어! 나 친구랑 해외여행 간다고 했어.”


“그걸 믿으셔? 그렇게 쉽게 믿을 거면 왜 여태 그 방법을 안 쓴 거지?”


후회했다. 정말 그렇게 쉬운 일이었으면 그 전에도 1박 2일 여행도 자주 다니고 그럴걸.




여행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떠나기 1주일쯤 전인가,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다. @@이 아빠다.”


“네!? 네! 아버님! 먼저 전화를 한번 드렸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건강하시죠?”

‘왜 전화를 하신 거지?’


“어 그래. @@이랑 잘 만나고 있는 거지?”

“네 그럼요 아버님! 잘 만나고 있습니다.”

“음.. 다음 주에 친구들이랑 해외여행을 간다는데.. 알고 있나?”


‘아아아 아아아아아… 망했다.’


정말 대답하기 몇 초 동안 수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아버님에게 거짓말을 해야 하나? 평소에 거짓말을 너무도 싫어하기도 하고, 게다가 예비 장인어른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나중에 알게 되신다고 얼마나 실망을 하실까?

나의 기준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야지. 여행 1주일 남았는데 가지 말라고 하시면 손해가 얼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중요하니까 그 짧은 시간에 이 생각도 나는 거겠지.


“네 아버님.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랑 가는 거지?”


‘꺄아아아아’


차라리 다행이다.


“네! 아버님 정말 죄송합니다. 솔직히 땡땡이가 알아서 한다고 하고, 친구들이랑 간다고 말씀드린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버님! 그런데 정말 지금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여행 그냥 취소해도 됩니다 아버님! 잘못했습니다!”


정말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아버님! 사실 이번 여행이 그냥 여행은 아닙니다! 제가 @@이한테 프러포즈를 하려고 여행을 가는 겁니다!”


“프러포즈?”


“네 아버님! 프러포즈요. 제가 준비도 다 했거든요.”


“아.. 프러포즈 때문에 가는 건가? 음…”

“그래도 이 친구야.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야. 가게 되든 못 가게 되든 허락을 먼저 구하는 게 맞지 않나?”


“네 맞습니다. 아버님”


“남자 입장과는 다른 거네. 이렇게 말도 안 하고 결혼도 하기 전에 마음대로 며칠씩 여행을 하는 건, 상대방의 집을 무시하는 거와 마찬가지야. 그런 건 아니겠지만 어렵지 않게 생각을 하니 그렇게 여행도 마음대로 가는 것 아니겠나?”


“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닙니다.”


“그래. 이번은 그냥 넘어가겠네만, 다음부터는 국물도 없네.”

“프러포즈 멋지게 성공하게.”


“네 아버님 감사합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소름이 쭉 돋는다. 정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너무 죄송스러웠다. 장인어른 말씀에 의하면 아직까지 장모님은 이 사실은 모른다고 하셨다.


그나저나 이때부터였나?


나는 아내의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은 믿지 않는다.



나는 아내와 보라카이로 여행을 떠났다.
프러포즈를 위해!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