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졸지에 가수가 되어 버린 일

카심의 거짓말

by 망고아미고


첫 해외여행을 용감하게도 혼자, 그리고 귀국 날짜 없는 장기여행을 떠났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곳을 찾다가 ‘세부’와 가까운 두마게테라는 섬으로 정하여 출발했다.

첫 시작부터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다행히 두마게테 지역 커뮤니티에서 ‘카심’을 만났다.

두마게테에서 계획도 없고 가이드도 없었던 터라 지역 커뮤니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글을 남겼던 것이다.

“두마게테에 한국인이 혼자 여행을 왔어요. 친구가 되어주실 분이나 가이드해주실 분 찾습니다”.”


글을 올리고 하루가 지나고 커뮤니티에 답글이 달렸다!

“나 카심이야. 여기 실리만 대학교에서 유학하고 있어. 나 이란 사람이야. 한국어 조금 할 줄 알아. 내일 실리만대학교 정문으로 오전 10시까지 올 수 있어? 답장해!”

“ 필리핀에서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이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니!”

역시 사람은 죽는 법은 없다. 카심을 만나러 실리만 대학교로 향했다. 10시가 되기 전에 누가 봐도 이란 사람인 카심을 만났다.

카심은 예상대로 조각 같은 얼굴에 까무잡잡한 피부,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는 친절한 청년이었다.



약간 이런 느낌이었다.


카심은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하고 학교 구경하면서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카심은 축구를 아주 좋아하고 유학 온 주제에 자동차를 소유한 금수저였다.

어색함을 느끼기도 전에 여행 둘째 날 친구를 만들었다.



저녁밥까지 해결하고 들어온 나는 바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호텔 컴퓨터로 갔다. 장기로 묵을 숙소를 찾아야 했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한 달짜리 단기 숙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았다. 일단 3일 체크인을 했으니 2일간의 시간은 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유명한 대학교가 있는 지역이니 학생들이 지낼만한 숙소라도 있을까 하는 마음에 카심에게 연락을 했다.

“ 지금은 학기 중이라 구할 수 있는 장기 숙소는 없을 것 같아.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자. 손님방이 있어서 거기서 지내면 될 것 같아.^^”


‘이런 천사 같은 친구 같으니라고.’


너무 고마워서 그날 저녁을 사기로 했다. 우리가 간 곳은 오래된 목조건물의 2층에 있는 천장이 없는 술집이었다.

카심과 내가 들어가 보니 그곳에 있던 거의 모든 손님들이 카심의 친구들이었다.

카심은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같이 즐겁게 식사를 하고 술도 꽤 많이 마셨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에 카심을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지금 이 동네에서 한국인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알아? 관광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들 널 너무 신기해한다. 그래서 내가 장난 좀 칠께!


“헤이! 얘들아 내 친구가 사실 한국에서 연예인이야! 무려 가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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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다니.

그래 너희들끼리 그렇게 놀아라. 뭐 내일쯤이면 사실대로 얘기하겠지.

또다시 카심이 속삭였다.

카심의 대학 친구(이란 출신) 삼촌이 두마게테에서 술집을 운영한다고 하며,


“삼촌에게 네 얘기를 했더니 지금 당장 거기로 오라고 했대! 그 삼촌이 한국이라면 사족을 못 쓰거든.

무대도 있고 반주기계도 메이드 인 코리아야. ㅎㅎ”


카심과 그의 모든 친구들은 신나게 떠들며 그 술집으로 향했다.

맨 정신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화를 내며 왜 그런 장난을 쳤냐고 하기에도 그렇고, 그 삼촌분께 가서 사실대로 말하기는 너무 늦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중에 바로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카심 친구 삼촌만 있는 게 아니라, 그 동네 이란 사람들은 다 모인 듯했다.

1…2…3…. 4……. 14…. 적어도 20명 이상이다.


그분들 역시 한국에서 가수가 왔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었다.


하아 미친…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술에 떡이 되어 있고, 사람들은 한국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을 했다.

모든 사람들이 나만 집중하고 있고, 카심 친구 삼촌이 가장 좋아한다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다.

노래를 마치고 살짝 분위기를 보는데 내 예상과는 반대로 거의 감동의 도가니였다.


무슨 가수냐며 실망할 것 같았던 사람들은 앙코르를 외치며 너무들 좋아했다. 이 반응은 뭐지?


아하!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미국인이 영어로 노래하면 잘해 보이듯이, 한국인이 한국 노래를 하면 잘해 보인다는 것을.

결국 3곡을 더 부른 후에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 삼촌은 나의 노래에 너무 감동을 하셨다.

감동한 얼굴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탬버린 하나를 건네주며

“이 가게 오픈할 때부터 모은 병뚜껑으로 만든 수제 탬버린이야. 한국에서 무대에 설 때 이 탬버린을 한번 쳐주면 고맙겠어.”

라고 하셨다.

그 탬버린을 들고 사진을 몇 번이나 찍었는지 모른다.

그 사진들을 언제까지고 액자를 만들어서 이 가게에 걸어 놓을 거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한국에서 온 가수라며 거짓말을 하고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그 사람들이 감동한 일은 내가 잘한 것인지 그저 거짓말인 건지 모르겠다.
그분들에게 좋은 추억으로 평생 남는 것이 가장 좋은 거겠지?
그 이란 사람들의 추억을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나의 가장 사랑했던 첫 번째 해외 여행지 ‘두마게테’에는 가지 않는다.


그나저나 15년이 넘은 지금 아직도 그 사진이 그곳에 걸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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