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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Feb 26. 2024

앵무새 초롱이가 날아오르던 날

매거진의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망고와 자몽이가 오기 전 우리 집에는 초롱이와 하늘이가 있었다.
러브버드(Love Bird)라 불리는 모란앵무답게 초롱이와 하늘이는 유난히 사람을 좋아했다.
아침이 밝으면 녀석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애타게 사람 가족을 찾는 것이었다. 출근 준비하느라 부산을 떨며 새장 앞을 오가노라면, '얼른 새장에서 우리를 꺼내주지 않고 뭘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 우리를 향해 둘이서 함께 소리를 내질렀다. 맘 약해진 가족 중 누군가가 못 이기는 척 슬며시 새장 문을 열어주면, 반갑고도 힘찬 날갯짓으로 사람의 품 안으로 곧장 돌진했다. 그러다 아직 잠자리에서 뒤척이고 있는 가족을 발견할 때면, 귓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일어나!!'라고 귀청이 떨어져라 아침 기상 노래를 부르기 바빴다.



때때로, 사람에 대한 하늘이와 초롱이의 지극했던 애정이 어쩌면 녀석들이 우리 곁을 떠나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새들도 나름 진중하게 생각을 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나의 부주의로 하늘이가 하늘나라로 가고 장례식을 치른 후, 가족들에게 표현은 못했지만 한동안 죄책감에 빠져 지냈다. 그런데 이런 나를 위로라도 하려는 듯, 초롱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씩씩하고 밝은 모습으로 내 곁에 머물렀다. 하늘이를 떠나보낸 그 아침 이후로, 울부짖듯 소리를 높이던 초롱이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었던 밤의 산책길에서 초롱이가 날아올랐던 그날, 하늘이가 곁을 떠난 뒤 두 달 여동안 초롱이가 이 순간을 꿈꿔왔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소심했던 초롱이가 기다렸다는 듯 새까만 밤하늘 위로 힘찬 날갯짓을 하던 그 모습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기 세고 씩씩했던 하늘이와 다르게 초롱이는 겁이 많은 아이였다. 활동적이고 자유로웠던 하늘이에 비해 바깥세상을 무서워했고, 사람품 안을 파고들어 캥거루 새끼처럼 옷깃 밖으로 고개만 겨우 삐죽 내밀거나, 그도 아니면 겨드랑이나 따스한 온기로 가득한, 폭신폭신한 배 위에 몸을 숨기고 있곤 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종종 초롱이를 품은 채 집 앞 편의점을 가거나, 때로는 함께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 머리만 빼꼼 내다보이는 새를 대동하고 편의점 계산대 앞에 서 있노라면, 편의점 사장님이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기가 막히다는 웃음소리를 내뱉으며 우리에게 초롱이게 관한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새를 몸에 메단 채 밖을 돌아다니는 사람을 볼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런 상황을 여러 번 마주한 사장님은, 우리가 초롱이 없이 등장한 날이면 당연하다는 듯 초롱이의 안부를 물어오곤 했다.



그런 날들을 보내며 우리는 초롱이를 바깥에서 날 생각조차 못하는 아이라 여겼던 것 같다. 초롱이는 우리를 떠날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거라고 우리 맘대로 규정짓고 방심했다. 아니, 어쩌면 초롱이는 새니까, 딱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정도의 지능을 가졌을 거라고 앝잡아 봤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우리 생각을 알았던 건지, 초롱이는 조용히 자신이 떠날 날을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의지했던 절친 하늘이가 떠나고 홀로 남았던 집에서 그저, 묵묵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초롱이는 우리를 안심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함께 산책을 나갔던 그날, 날아오르기 직전까지 초롱이의 행동은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잠시 산책로 위에 내려다 놓았을 때도 그 자리에 멈춘 채 우리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고는 이내 여느 때처럼 따스한 품속을 파고들었다. 곧게 뻗은 그 오솔길로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밤, 초롱이는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딸램의 품 속에 머무르고 있었다. 아이가 간지럽다며 깔깔거릴 정도로, 아이의 속살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며 부리로 살을 간질이고 온기를 나누며.
그러다 마침내, 우리가 집에 도착하기 직전 마지막 산책로로 접어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점에서, 마치 오랜 결심을 실행하듯 딸램의 품을 떠나 가로등 불빛을 가르며 생애 처음 시선 너머 높은 곳으로 거침없이 날아올랐다.


 "초롱아, 초롱아!! 가지 마~~"


놀란 딸램은 울먹이는 목소리를 내지르며 날아가는 초롱이 뒤를 따라 있는 힘을 다해 쫓아갔다. 미처 상황 파악을 하지 못했던 나는, 저만치 앞서가는 초롱이와, 초롱이에게 닿기 위해 간절하게 뛰어가는 딸램의 뒷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신기한 상황이 펼쳐졌다. 울부짖는 딸램의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린 건지, 초롱이가 날아오르기를 멈추고 다시 땅 위로 내려앉은 것이었다. 차마 뒤는 돌아보지 못한 채, 초롱이는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그러나 전속력으로 달리던 딸램이 자신과 점점 가까워지자, 초롱이는 다시 힘차게 가로등 위로 날아올랐고, 마침내 우리 시선 밖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환한 가로등 불빛을 너머, 우주를 닮은 광활하고 까만 밤하늘 위로.



초롱이에게서 어떻게 그런 용기가 솟아 나왔을까. 세상을 다 잃은 듯 통곡하던 딸램 옆에서 먹먹해진 마음의 나는, 초롱이가 사라진 밤하늘을 하염없이 올려다보며 그 순간의 초롱이 마음을 이해해 보려 애쓰고 있었다. 하늘이를 떠나보낸 나를 초롱이는 용서할 수 없었던 걸까 생각하며.



딸램과 나는 혹여나 초롱이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름밤이 깊어가도록 초롱이를 찾아 아파트 일대 산책로를 돌고 또 돌았다.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애써 밀어내며, 초롱이가 우리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으리라 믿었다. 우리 곁을 결코 떠날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초롱이를 무시했던 우리는 그제야, 초롱이가 다시 우리를 찾아올 의지와 지능이 있으리라 여기며 부질없는 기다림을 이어갔다.



결국 초롱이는 안전하게 우리와 함께 머무르는 대신, 거친 자유를 향해 용기 있게 나아갔다.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하늘이와 초롱이 둘 모두를 잃어버린 우리는 한동안 무기력한 그리움과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런 우리를 걱정해서였을까, 초롱이는 우리에게 마지막 선물을 남기고 떠난 것 같았다.

못난 사람 가족이 지지리 궁상떨며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않도록, 초롱이는 우리에게 또 다른 인연을, 나에게는 이야기를 쓸 영감과 용기를 안겨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자몽이와 망고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초롱이가 선물해 준 이야기로 생각지도 못한, 출판사 장편동화 공모전 최종심까지 오르는 기쁨을 맛보았다.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이 이야기를 언제고 꼭 예쁜 책으로 만들어 초롱이와 하늘이에게 선물로 되돌려주고 싶다. 그 아이들의 모습을, 우리와 함께 했던 이야기를 오래도록 아름다운 기억으로 새기면서..

우리는 남남 절친 사이(초롱 & 하늘)
아이들 품 안을 유독 좋아했던 초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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