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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Feb 13. 2024

산책길에 뜻하지 않게 인싸가 되다

일주일에 한 번쯤, 김치와 함께 산책길에 나선다.

김치의 성장 속도를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불과 넉 달 전만 해도 손안에 쏙 들어오던 여리고 작던 생명체가, 마치 아기 타조를 연상시킬 정도의 덩치와 겅중겅중한 발걸음을 갖춘 성체로 자라나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이. 그것도 어설픈 주인장의 돌봄에도 불구하고, 병치레 한 번 하지 않고 쑥쑥, 씩씩하게 덩치를 불려 가는 모습이니 말이다. 기특하기 그지없어하는 사람 가족은 이제, 너 클 수 있을 때까지 한번 커봐라, 하는 심정이다.



병아리 시절, 작은 상자 안도 뛰어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김치는 이제 제 키 높이를 훌쩍 뛰어넘는 침대 위까지 넘보다 가끔은 그 큰 덩치로 풀쩍 뛰어오르는 만행(?)을 저지르곤 한다. 물론, 주인아줌마의 우렁찬 경고와 함께 이내 화들짝, 방바닥으로 다시 주저앉기 마련이지만. 개 한 마리가 들어갈 정도의 제 집도 이제 비좁고 답답해 보이는 통에 우리는 종종 김치를 앞마당이라도 되는 양 거실에 풀어놓는데, 그것도 부족해 보일 때면 김치를 앞세우고 아파트 단지 내로 마실을 나간다.



산책이라고 하여, 김치가 강아지처럼 종종 거리며 우리를 앞서 가거나 성실히 쫓아오지는 않는다. 김치는 닭이니까, 닭에 걸맞은 행동을 한다. 사람이 어느 곳으로 가든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도도한 자태를 한 김치의 관심은 온통 땅으로 쏠려있다. 곳곳에 있는 흙은 김치에게 몹시도 매력적인 대상이다. 부리로 쪼고, 냄새를 맡고, 입맛을 쩝쩝 다시며 오 분이고 십 분이고 흙의 질감과 향을 음미한다. 김치를 뒤쫓아가는 신세인, 참을성 부족한 사람 가족은 답답한 마음에 어서 발걸음을 내딛으라고 재촉하지만, 김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제 할 일에 심취해 있다. 답답하더라도 어쩌겠는가. 동동거리는 마음을 지닌 자가 약자이고 '을'인 것을. 반복되는 독촉이 약발을 듣지 않으면 그제야 우리는 마음을 내려놓고 김치 근처에서 가만히 김치의 동태를 관찰하거나, 하릴없이 주변을 살피며 엉거주춤 서 있는다.



그러다 만족스러울 정도로 흙을 탐미한 김치가 '고사리 같은 발'을 앞으로 내딛으려 하면, 기쁜 마음에 종종거리며 뒤쫓는 건 다름 아닌, 사람인 우리들이다. 닭을 키우기 전에는 몰랐는데, 닭의 걸음걸이는 씩씩하고도 우아하다. 술안주로만 접했던 '닭발'은 앙상하고 볼품없었건만, 살아있는 닭의 발은 고양이 앞발만큼이나 어찌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고양이 발 가운데에 있는 동그랗고 폭신폭신한 부분 -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다 - 이 닭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김치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김치는 높은 곳에서도 부드럽고 능숙하게 바닥으로 착지를 하곤 한다. 김치의 날개는 이럴 때 안전한 착지를 거들뿐이다.

김치에게 흙은 사랑입니다

김치가 그 귀염귀염한 발로 사뿐사뿐 단지 내를 걸을 때면, 평소라면 그저 우리를 스쳐 지나갔을 이웃 주민들이 충격을 먹은 듯한 표정으로 발걸음을 차례로 멈춘다. 도심에서, 그것도 아파트 단지 내를 산책하고 있는 '살아있는 닭'을 볼 일이 없으니 당연하기도 할 테다. 도시인들에게 닭은 그저 주말 밤 엘리베이터에서 풍기는 달콤한 치킨 냄새로 친숙한 존재이니, 완연한 깃털로 덮인 채 닭벼슬을 세우고 있는 닭이 일상의 공간을 걸어 다니고 있는 모습은 사뭇 낯설고 놀랍기도 할 것이고. 김치와 함께 나서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우리를 쳐다보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실제 우리가 접한 상황은 상상했던 그 이상이었다.



김치를 보고 광분하는 강아지들, 감탄사를 내지르는 아이, 아이 뒤에서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 있는 부모들, 닭을 한번 안아보겠다며 서로 아우성치는 꼬맹이들과 김치를 쫓아오는 어르신들까지...

얼떨결에 우리는 마치 유명인을 앞세우고 런웨이 위를 걷는 무리가 되어버렸다. 김치의 '건강권'을 보장하겠다며 나선 길에서 말이다. 특히 놀라웠던 건, 어르신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이었다. 사실 처음엔, 사람들이 김치를 '맛있는 치킨'을 보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그건 그야말로 기우였다.  누군가는 김치의 '혈통'을 물어보며 경이를 담은 표정으로 김치를 바라보거나, 심지어 물기 어린 눈빛으로, 어린 시절 이후 닭을 처음 본다며, 오랫동안 잊고 지냈을 옛 추억을 소환하는 이도 있었다. 낯설고도 애틋한 이러한 반응들은 주로 어르신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개중 한 어르신은 처음 김치의 모습을 포착하고는, 자신의 눈이 의심스러운 듯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 동안 김치를 지켜보고 계셨다. 어느 양계장에서 탈출이라도 한 녀석인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러다 아마도 '이 근처에 양계장이 없을 텐데, 도대체 저 닭은 어디서 왔을까' 고심에 빠졌을는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멈춰 서 있던 어르신이 생각에서 빠져나오셨는지, 김치 주변에서 얼씬거리고 있는 우리를 미심쩍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셨다. 그러고는 이내 혹시 우리가 김치의 '일행'인 거냐고 물어보셨다.



이후로 김치에 관해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내던 어르신은, 심지어, 감격스러워하는 얼굴을 내보이시며 '우리가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라며 엄지 척을 들어 보이셨다. 우리는 졸지에 아파트에서 닭을 키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김치 주변에 꽤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음에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으셨는지, 어르신은 꼭 다시 보자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아주 천천히, 가던 길로 다시 향하셨다. 중간중간 흘끔흘끔 뒤돌아보기를 멈추지 않으며. 그 모습이 마치, 이제 막 사랑에 빠진 연인을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서는 청년과도 같았다. 아마도 그 순간 그분의 마음은 오래전 자신이 청년이었던 날들을 넘어, 부모님마저 젊었던 어느 시절로 달려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어렸을 적부터 타인에게 주목받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던 나였지만, 어쩐지 김치에게로 쏟아지는 관심은 싫지가 않다. 마치 잘 키운 자식에게로 쏟아지는 사람들의 칭찬을 마주한 기분이랄까. 그런데,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더 이러한 시선이 즐거운 모양이다. 몇 번 김치를 대동한 산책을 하고 나더니, 일부러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김치를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앞으로 김치와의 산책이 우리의 일상으로 자리 잡을 것 같다. 김치에게는 건강을, 꼬맹이 친구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을, 어르신들에게는 추억 소환의 시간을,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는 일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아파트 이웃들의 관심 한가운데에 서는 낯선 경험까지 주는 소중한 산책길이니 말이다.

병아리 김치의 첫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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