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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Sep 25. 2023

‘김치’의 탄생

오랜 염원을 이루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신나게 통과하던 교문 앞에는 내 시선과 발걸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집으로 달음질쳐가던 내 마음을 붙들어 맨 대상은 다름 아닌, 봄날의 개나리처럼 샛노란 병아리들이었다.



잊을 만하면 귀갓길 우리를 교문 앞에서 맞이하던, 모자를 눌러쓴 병아리 장수 아저씨는 적극적으로 병아리를 홍보할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아저씨는 그저 병아리가 담긴 상자 뒤편에 무심히 앉아서,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간헐적으로 눈을 맞출 뿐이었다. 흡사 '이래도 그냥 집에 갈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그도 그럴 것이, 병아리들이 아기 종달새처럼 합창하며 내지르는 '삐약삐약' 하는 소리만으로도 하굣길 아이들은 마치 동화 속 마술 피리에 홀린 어린이들처럼 상자 쪽에 들러붙어서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나도 '상자에 붙어 있던' 그 아이들 중 하나였다. 그 시절 학교 앞 샛노란 병아리는 여름날 새하얀 연기를 뿜어대던 소독차만큼이나 아이들에게 거부하기 힘든 마력을 발하는 존재였다.



병아리가 크면 우리가 즐겨 먹곤 하는 닭이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부모님이 결코 병아리 키우는 것을 허락할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병아리를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싶다는 욕망을 쉬이 떨쳐내지 못했다.

그만큼 내 작은 손안에 쏙 들어오는, 보송보송한 솜털의 병아리는 어린 내게 강력한 '소유욕'을 불러일으키곤 했고, 끝끝내 욕구를 충족하지 못했던 나는 병아리를 키우던 친구들의 집을 방문하는 것으로 대리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정보가 공유되지 않던 그때, 반려동물 키우기에 어설펐던 친구들은 며칠도 못 가 병아리를 병들게 하고 결국엔 하늘로 떠나보내고야 말았다. 반복적으로 그런 상황들을 겪으며 나는 ‘병아리를 키우고 싶다'는 마음에서 조금씩 멀어져 갔다.



그러다 얼마 전, 쭈니와 함께 나간 저녁 산책 길에서 잊고 있던 간절한 마음이 되살아났다. "엄마, 나 병아리 키우고 싶어."라고 말하는 쭈니 앞에서 나는 머뭇거릴 새도 없이, 아니 오히려 신이 나서 그만 "그럴까?!"라고 대답해 버린 것이다.

엄마에게서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고 예상했었던지 그 순간의 쭈니는 놀라워하는 기색이 완연했으나, 이내 나보다 더 들뜨고 흥분해서는 "얼른 부화기부터 사자, 엄마!"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 후 짝꿍까지 우리의 계획에 흔쾌히 동참하면서 우리 가족의 '병아리 키우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한 일은 마트에서 '유정란'을 구입하는 거였다. 산란한 지 일주일 이내의 신선한 것으로. 사실, 여기저기에서 줍줍 한 정보에 따라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면서도 부화가 되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우리가 흔히 마트에서 사 먹던 유정란이 생명체로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저 이론 속에서만 가능한 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면서도 선생님이 된 내 모습이 비현실적인, 머나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평범했던 계란이 가족들의 관심 속에서 하루하루, 조금씩 하나의 생명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일도 정성과 애정이 깃든 시간과 함께라면 충분히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물론, 답답한 마음을 견뎌내야 하는 날들도 있었다. 중간에 성장을 멈춘 알들도 있었고, 부화 기간인 3주를 넘기도록 변화의 기미가 없어 보이는 알 때문에 초조하고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럼에도 부화를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들을 묵묵히 하며 생명이 탄생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린 결과 드디어, 25일 만에 우리 가족은 한 마음으로 새로운 생명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감격스러운 장면을 목도할 수 있었다.

‘김치’의 탄생

신기하게도, 병아리는 알을 깨고 나오기 전부터 소리로서 자신의 존재를 열심히 알렸다. 마치 '나 곧 나갈 테니 응원해 주세요!'라고 외치듯이. 가냘픈 듯하면서도 힘찬, '삐약삐약'하는 생명의 소리를 제일 처음 들은 내가 한 걸음에 달려 나가 거실에 있던 아들램에게 소식을 전했고, 그 소식은 딸램의 공부를 지도해주고 있던 짝꿍과 딸램에게도 전해졌다.

그렇게 집안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각자의 일을 하고 있던 우리는 일제히 부화기 앞으로 모여들어 아이고 어른이고 간에 눈을 빛내며 큰 소리로 웃고, 방방 뛰며 난리법석을 피웠다. 얼마 후, 온 가족이 부산을 떠는 가운데 딸램이 '김치'라고 이름 붙여준 삐약이가, 보란 듯이 자신이 갇혀 있었던 알을 시원하게 반으로 가르며 세상 밖으로 핑크빛 부리와 매끈한 발을 쏙, 내밀었다. 그때가 자정 무렵이었고, 들뜬 마음을 어쩌지 못한 우리는 새벽 3시가 넘도록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김치가 그 앙증맞은 발을 우리에게 보여 준 그 순간, 누구보다 큰 행운을 거머쥔 건 바로 나였다. 얼마 전 작은 신경전이 있은 후, 내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던 사춘기 딸램의 견고했던 장벽이, 김치의 등장으로 일순간 완전히 무장해제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떻게 애써도 무너지지 않고 있던 그 벽이 말이다.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과 함께 이제 우리 집은 ‘새판’이 될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도 부화되기를 기다리는 알들이 더 있는 데다가, 이 집의 터줏대감인 모란앵무 자몽이와 왕관앵무 망고가 여전히 건재하고 있기에.

놀라운 속도로 자라날 병아리가 닭이 될 날이 머지않았지만, 그 닭(들)과 어떻게 동거해야 할지, 기겁할 (나의) 엄마를 무슨 수로 설득할지 지금으로선 마땅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지만,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리니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 의견을 모으며 '김치'의 매력에 사로잡힌 철없는 엄마 아빠와 아이들은 지금의 이 행복한 순간을 함께 즐기기로 하였다.

'감치'의 치명적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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