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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Aug 28. 2023

새들의 선물

'자몽이'와 '망고'가 오기 전에  우리 집에는 '초롱이'와 '하늘이'가 있었다.


이중에 가장 먼저 우리 집 식구가 된 건 모란앵무 초롱이다. 첫째 아이의 피아노 학원을 거쳐 우리 집에 온 사랑앵무 '구름이'가 입양된 지 채 보름이 되지 않아 세상을 뜨자 아이들은 집이 떠나가라 대성통곡을 했고, 결국 초롱이가 우리 집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초롱이가 들어온 지 두 달쯤 후, 모란앵무 하늘이도 우리 집 식구가 됐다. 초롱이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한다는 명목이었다. 많은 부모들이 첫째 아이가 외로울까 (생각지도 않았던) 둘째를 진중히 고려하게 되는 것처럼.

(좌로부터)하늘이, 초롱이, 자몽이, 망고

초롱이는 지금의 자몽이와 비슷한 빛깔의 모란앵무, 하늘이는 이름 그대로 하늘을 닮은 아이였다. 둘은 같은 모란앵무지만 성격이 사뭇 달랐다. 초롱이가 여느 모란앵무들과는 다르게 순둥순둥했던 반면, 하늘이는 꽤 까다롭고 날카로운 성질을 지녔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성격적 특징은 지능과도 일면 연관이 있어 보인다. 초롱이는 머리를 잘 쓰지 않는 어수룩한 아이였는데 반해 하늘이는 재치와 약삭빠른 면이 있었다. 이러한 판단은 아이들이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나, 새로운 대상을 접할 때 어떤 식으로 반응하는지 등을 관찰한 결과로부터 내려진 것이다. 순하면서 어리바리한 초롱이는 빠릿빠릿하고 성깔 있는 하늘이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끌려다니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었다. 다만 초롱이와 하늘이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둘 다 수컷이라는 사실이었다.



모란앵무들의 성별을 외모상으로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부리 위의 납막(콧구멍) 주변의 색으로 성을 식별할 수 있는 사랑앵무(잉꼬)들과는 다르게.

모란앵무의 성별은 그들의 행동, 특히 발정기 동안 드러나는 행위, 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처음에 우리는 하늘이가 수컷, 초롱이가 암컷이라고 추측했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잠재되어 있던, 암컷이 더 순하리라는 편견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다. 성격은 차치하고서라도, 실제 발정기 동안 하늘이가 초롱이 등을 종종 올라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그러한 판단이 옳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초롱이도 어엿한(!) 수컷이었다. 꽤 오랫동안 초롱이가 암컷이라 여겨왔던 우리 가족에게 그 사실을 깨우치게 해 준 현장은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어느 날, 하늘이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자리에서 초롱이는 자신이 수컷임을 당당하게 만천하에 드러내기로 맘먹은 모양이었다. 그동안 초롱이는 어쩌면 하늘이에게 서열이 밀려, 하늘이의 기에 눌려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늘이가 원하는 대로 암컷의 역할을 수행했던 것뿐이었을는지 모른다. 당시 우리 집은 서열 매기기에 진심인 수컷 새들만이 있는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그제야 그간 초롱이가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한 삶을 살았을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초롱이는 집안에 있는 보드라운 인형들을 찾아다녔다. 더 이상은 '암컷 행세'만 하지는 않겠다,는 나름의 결연한 의지 표명이었을까?

초롱이는 곰인형, 피카추 인형, 때로는 털이 북실북실한 정체 모를 인형에 이르기까지, 집안에 있는 온갖 인형들을 상대로 자신만의 애정 행각을 벌이기 시작했다. (물론 초롱이에게도 최애 인형은 있었다!) 처음 초롱이의 '발칙한' 행동을 본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너무도 귀엽고 앙증맞은 초롱이가 자기만큼이나 귀염귀염한 인형 위에 올라타고서는 괴상한 소리를 흘려대며 야시시한(?) 춤을 춰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댄스 삼매경인 초롱이

그날 자신의 욕정에 부합하는 인형을 찾으면, 초롱이는 하늘이보다 훨씬 더 성실하고 적극적인 몸놀림으로 인형 위에서 '부비부비 댄스'를 췄다.


  "엄마, 초롱이 왜 저러는 거야?"


처음 아이들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받았던 날, 나는 괜스레 혼자 얼굴이 화끈해져 가지고서는 '엄마도 잘 모르겠네...'라며 시치미를 뚝 뗐더랬다.

그런데 역시, 처음의 그 엄청난 충격도 비슷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충격 지수'가 서서히 내려갔고, 난 언제부터인가 ‘그래~ 또 올 것이 왔나 보네.'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급기야는 아무렇지 않게 초롱이의 리드미컬한 댄스를 히죽이며 지켜보기에 이르렀다.

신기하게도 딸램과 아들램은 어느 시점에 이르자, 내가 특별히 얘기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는 듯 보였다.  "엄마, 초롱이 교미라도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안타까운 물음을 던지며. (어쩌면 아이들은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을는지도 모르겠으나 흠흠)



이러한 질문이 내게로 향하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하고 있었던 나는, 아이의 급작스런 물음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우리가 초롱이 새끼들을 다 키울 수는 없잖아?”

라고, 완벽히 표정관리 된 얼굴로 대답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섰다.



초롱이와 하늘이에게 한 가지 진심으로 고마웠던 점은, 우리 아이들이 성적인 행위를 '징그럽고 감추고 싶은' 것이 아닌, (성체들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어떤 행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우리 부부는 머리 싸매고 연구하지 않고도 가정에서의 성교육을 어느 정도 이루어 냈다. 그것도 상당히 밝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부모로서 완수해야 할 부담스러운 숙제를, 엉겁결에, 해냈다. 이건 새들이 우리에게 안겨준 선물임에 틀림없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시절 초롱이의 경쾌한 부비부비 댄스가 문득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부비부비 댄스를 위한 초롱이의 최애 아이템. 목욕이 필요해 보이나, 초롱이의 체취가 사라질까 봐 차마 씻기지 못하고 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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