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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Jun 13. 2023

사랑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

앵무새도 무척 다양한 종들이 있다.

우리가 흔히 '잉꼬'라고 부르는,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사랑앵무부터 몸길이가 1미터에 육박하는 금강앵무 -'피터팬'의 후크선장의 어깨 위에 있는 녀석- 까지 무려 320여 종이 지구상에 살고 있다고 한다.

개중 우리 집에 동거하고 있는 두 녀석 - 모란앵무 자몽이와 왕관앵무 망고 - 는 크기가 작은 편에 속한다. 꼬리가 유난히 긴 왕관앵무는 꼬리까지 포함되는 몸 전체 길이로 인해 분류상 중형 앵무에 속하긴 하지만, 머리 크기나 몸집만으로 보면 소형으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다.

각각의 매력으로 어여쁜 아이들. (왼편 아래부터 시계 방향) 왕관앵무, 사랑앵무, 모란앵무, 금강앵무


처음 앵무새와 동거를 하게 된 건 반려동물로 가장 흔한, 아이들이 원했던 '개'를 키울 자신이 없어서 택한 차선책이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다른 반려동물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녀석들의 매력에 흠뻑 스며들고 있다. '앵무새는 사람 말을 잘 따라 한다' 라던지, 아둔한 사람들을 가리켜 '새대가리'라고 일컫는 비유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만든 편견들을 하나씩 깨부수어 가며.

우리 집 앵무들은 사람말을 흉내 내지 못한다(않는다). 다만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는 지대한 관심을 보인다. 꼬슬꼬슬하게 익힌 쌀, 빛깔도 선명한 토마토 스파게티, 심지어는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삼겹살에도 불 무서운 줄 모르고, 사람은 '참새'도 구워 먹는 종들임을 모른 채, 고개를 마구 들이밀며 흥미를 표한다.



녀석들은 분명 '새'이지만 때때로 '개'를 키우고 있는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바깥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나를 가장 반겨주는 건 내 아이들이 아닌 앵무새 - 특히 사람을 좋아하는 모란앵무 - 다. 나를 보면 집안이 쩌렁쩌렁하게 '하이 소프라노'로 반갑다고 지저귄다. 귀찮다고 쫓아내는 나의 무정한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내게 관심과 애정을 표한다. '난 그래도 당신이 좋아요!'라는 표정과 몸짓으로 설거지하는 내게 매달리고 돌아서는 내 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어깨 위에 올라앉아 귀청이 나갈 정도로 지저귈(짖어댈) 때는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녀석들의 지저귐이 집안에 없어서는 안 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백색 소음'으로 느껴지곤 한다.



'당신의 편협한 생각을 고쳐주겠어요!'라고 말하려는 듯 지능적으로 구는 녀석들을 보며 감탄하게 된다.

모란앵무 자몽이는, '새장' 따위는 잠 잘 때나 들어가는 침실로 생각하는 듯, 아침이면 부리로 가볍게 새장 문을 열고 나온다. - 이것 때문에 난감해진 우리 사람 가족은 새장 문에 자물쇠를 몇 개나 달아야 했는지 모른다. 결국엔 다 무용지물이 되었지만 - 자기가 원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두어도 어느샌가 찾아내서 자기 것으로 만든다. 특히 자신이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는, 적당한 두께로 만들어진 책갈피나 엽서 같은 것들을.

왕관앵무 망고는, 약삭빠른 '사회생활'에 익숙하다. 식탐이 강한 녀석은 평소에는 도도하게 거리를 유지하다가도, 먹을 것을 손에 쥐고 있는 사람 가족에게는 엄청난 친화력으로 돌진해 온다.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포기가 없다. 하다 못해 쌀 한 톨이라도 자신의 부리에 쥐여줘야 잠시라도 편히 있도록 해 준다. 아무리 싫은 사람이라도 싫은 티 하나 내지 않고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결국엔 녀석의 강력한 의지에 사람이 굴복하게 만든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투척해 대는 '새똥'에 투덜거리다가도, 하릴없는 순간이면 물 티슈 하나를 집어 들고 마치 '포켓몬 찾기'를 하는 사람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닌다. 새똥 흔적 하나를 발견해 제거할 때마다 '집안 청결을 위해 보람된 일'을 했다는 흐뭇함을 하나씩 쌓아 올린다.

이따금 녀석들을 데리고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가면, 평소에 받아볼 일 없는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에, “어머, 예쁘기도 해라!”는 감탄 어린 말들에 자식 자랑하는 어미의 마음이 되어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녀석들에게서 은은하게 풍겨 나오는 '냄새'다.

냄새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좋고 '향기'라고 하기엔 애매한. 어린 시절 이따금 들렀던 시장통 방앗간에서나 맡을 수 있을 법한, 치명적으로 고소한 냄새가 바로 앵무새들의 '체취'다. 시골집 마당 한편에서 익어가는 '밥 짓는 냄새'와도 같은 그것은 중독성이 너무도 강해서, 잊을 만하면 녀석들 위로 사람이 개처럼 코를 들이박고 '킁킁' 거리며 냄새를 갈구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럴 때면, 우리 사람도 익히지 않은 곡식만을 먹고살면 매일 샤워 따위 하지 않고도 이토록 매력적인 체취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녀석들에게도 흠결은 있다. 어쩌면 여기에 언급한 이 모든 좋은 점들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한편으론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녀석들의 지저귐은 때때로 텔레비전 시청마저 어렵게 하는 소음이 되고, 편견을 타파시키는 '지성미'는 우리를 난처하게 만든다. 사람에 대한 애착은 이따금 '스토킹'을 방불케 할 정도로 집요하다.

녀석들의 횡포(?)에 때때로 진저리를 치다가도, 이 자그마한 생명체들이 이렇게나 에너지 넘치는 세월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모든 것을 품어주고 싶은 마음이 되기도 한다. 소형 앵무들의 평균 수명은 길어야 10년. 그러니 녀석들의 청춘이 꽃피는 건 채 몇 년도 되지 않는, 찰나처럼 느껴지는 시간일 것이다.



때때로 (자신들이 보기에) 별 것도 아닌 일로 야단치며 난리법석 떠는 사람 가족을 앞에 두고 녀석들은 이렇게 부르짖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기요? 우리들의 10년은 당신들의 10년과는 달라요. 사랑만 하기에도 정말 모자란 시간이라고요!’라고….


눈치로도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어리석고 한심한 사람 가족들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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