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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Mar 17. 2023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

우리 집 반려조, 모란앵무 '자몽'이와 왕관앵무 '망고'는 원래 앙숙지간이었다.

망고보다 두 달 일찍 입양된 자몽이는, 대부분의 모란이-모란앵무의 애칭-들이 그렇듯 망고에게 텃세를 부리며 꼴사납게 굴었고 망고는 그런 자몽이를 피하다 간혹 큰 덩치가 부끄러울 정도로 소심한 반격을 가하곤 했다. 생김새도 성격도 너무 다른 둘은 꽤 오랜 시간을 냉랭하게, 소소한 전쟁을 치르며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부터 조그마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두 녀석이 서로를 공격하는 횟수가 줄더니 한 놈이 보이지 않으면 다른 한 놈이 목청을 돋워 울음소리를 내는 거였다. 그 소리는 마치 애타고 간절하게 사랑하는.대상을 향해 “너 어디 있어? 나 여기 있어~~!"라고 외치는 듯했다.



우리 가족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아이들의 성별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다 작년 상반기 무렵부터 자몽(모란앵무)이가 종이를 길쭉하게 찢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고, 망고(왕관앵무)가 자몽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보며 망고가 수컷, 자몽이가 암컷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렇게 서로에게 다가서기 시작한 녀석들은 이제 완벽함에 가까운 케미를 선보이며 환상적인 한 쌍의 커플이 되어가고 있다.

서로에게 늘 '관심의 안테나'를 세우고, 먹이를 정성스럽게 게워 서로의 입에 넣어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열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너무도 달랐던 녀석들이 상대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며 서로를 닮아가고 있다. 금슬 좋은 인간만이 상대를 닮아가는 것은 아닌가 보다.

서로에게 먹이를 먹여주며 애정을 표현하는 모습이 흡사 다정하게 키스를 나누는 커플같다(좌로부터 자몽이와 망고)


해가 바뀌고 녀석들의 행동이 점점 더 이상해졌다.

특히 모란앵무 자몽이의 행동이. 종이를 찢는 행동이 예전에 비해 무척이나 과격해졌다.

책장 구석에 숨겨진 책이나 종이, 심지어 앨범 속에 끼워져 있는 간지들까지 부리로 들춰내 찢었고, 그것도 부족한지 조각조각 파편으로 만들었다. 그 무수한 파편들은 와인냉장고 뒤편 잘 안 보이는 구석진 곳에 차곡차곡, 수북이 쌓여갔다.



처음에는 냉장고 주변이 지저분해지는 것이 보기 좋지 않아 부지런히 빗자루로 쓸어 담았다.

그러나 치워도 치워도 녀석은 똑같은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이 이처럼 집요하게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녀석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 간의 시간이 흘렀고 드디어 며칠 전,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가 냉장고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불안해하며 앞을 지키고 막아서는 녀석이 수상하다 싶어 조심스럽게 냉장고 뒤편을 관찰했더니, 하얗고 동글동글한 물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건 알이었다! 자그맣고도 앙증맞은 '새의 알'. 그것도 두 개씩이나 되는. - 알고 보니 한꺼번에 둘을 낳은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한 알씩 이틀에 걸쳐 낳은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튀어나왔다.

놀란 짝꿍이 큰소리로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자몽이가 알을 낳았다!"


거실에 있던 둘째도 평소 자신의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 첫째도 알을 보기 위해 한 걸음에 달려 나왔다.

우리는 함께 감탄하고 함께 기뻐했다.


"그런데, 모란앵무와 왕관앵무 사이에 알을 낳을 수 있는 거야?"


감탄하던 첫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분명 이제껏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생김새도 종류도 다른 둘은 결실을 맺을 수 없는 사이가 아니었던가.

짝꿍은 일말의 기대를 품고, 혹여라도 이게 가능한 일인지 정보를 검색했고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1. 둘 사이에도 알을 낳을 수는 있다는 것.

2. 하지만 그러한 알은 부화될 수 없는 '무정란'이라는 것.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음으로 이미 어미가 되어버린 자몽이는 밤낮없이 알을 품고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사실 우리가 서로 다른 종류의 앵무새를 입양한 건 여러 마리의 새끼들을 함께 기를 자신이 없어서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놓인, 어미가 열의를 다해 품고 있는 알을 보자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일었다.

어미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미의 정성이 닿아 새 생명이 탄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 믿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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