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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Oct 25. 2023

이야기가 시작된 이야기

나를 여기로 끌고 온 어떤 흐름에 관해

때론 그런 생각이 든다.

인생은 내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지만 이어져 내려온 흐름을 돌이켜보면, 어떤 힘에 의해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이끌어져 온 것이 아닌가 하는.

내 글쓰기 역사를 되돌아봐도 그렇다.



교직에 있었을 때는 방학이 돌아오면 독서에 파묻혀 지내곤 했지만, 내가 직접 '글을 쓴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내 병든 목으로 (그나마도 마이크에 의지해) 하루 온종일 수업과 아이들 생활지도에 부대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나는, 냉장고에서 한 달은 묵혀둔 파김치 같은 모습이었다. 자기 계발이니 자아실현이니 하는 말은 머나먼 나라의 공허한 말처럼 들렸고, 나는 마지막 남은 한 방울만큼의 체력으로 겨우겨우 집안일을 마치고, 육아에 허덕이다 잠자리에 들기 바빴다.



그러다 이 목으로 도저히 더는 교사로서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꽤 오랜 기간을 좌절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마음속으로 이직에 성공한 나를 그리고 또 그렸다. 다른 이유도 아닌 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신체적인 결함으로 번번이 직업생활을 하는 데 한계와 '무능감'을 느끼며 힘겹고 괴로운 삶을 지속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그렇게 뒤늦은 나이 나는 다시 도전한다는 마음으로, 이번에는 임용고시가 아닌, 9급 공무원 수험생활을 시작했고, 20대 신규 공무원들로 가득한 지자체 업무 전선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내가 처음 배치된 곳은 민원이 적은 편이라고 불리는 변두리의 한 주민센터였다. (총량의 법칙이 있는 것인지 '이상한 동료'들로 인해 맘고생을 하긴 했지만 - 궁금하신 분은 '직장 생활 일지' 매거진 참고해 주세요) 뜸하다고 해봐야 하루에 백 명이 넘는 민원인들이 오가는 곳이었지만, 다른 곳에 비해서는 확실히 숨 돌릴 틈이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새 업무에 익숙해질 즈음, 나는 민원을 보는 틈틈이 글을 읽고 혼자만의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잠깐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내 안에서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것이.

그 마음은, 이후 내가 구청으로 전보되고 이어 코로나19 시국에 들어가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덩치를 키워갔는데, 때마침 내게 주어진 결정적인 상황이 내 마음을 본격적인 실행 단계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하루에도 수만 명의 감염자가 나올 정도로 코로나19가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면서 내가 속한 지자체에서는 '분산 근무'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직원들이 여러 사무실로 분산 근무하게 함으로써 코로나 확산을 예방하겠다는 취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별 효과를 보지 못한 아이디어였지만, 어쨌든 나 개인의 역사에는 변곡점을 갖게 해 준 중대한 결정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분산 근무한다는 것 자체가 귀찮기도 했다. 터 잡고 있던 내 물건들을 임시사무실로 옮기고 컴퓨터와 전화선을 다시 설치해야 하는 그 모든 것들이.

그런데, (여기에 슬쩍 밝히지만) 사무실을 옮기고 보니 좋은 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중에는 일부러 분산 근무가 힘든 척 연기까지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분산 근무의 장점을 눈치챈 직원들이 서로 임시 사무실로 옮겨오고 싶어 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분산 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눈치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거대한 임시 사무실에, 팀장 없이 직원 몇 명과 근무를 하다 보니 내가 할 일을 마치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편안한 마음으로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었다.

사무실 근무를 해 본 이들은 알 것이다. 누군가가 내 컴퓨터 모니터를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무언가를 내 뜻 대로 하는 것이 얼마나 눈치 보이는 일인지를. 원래 있었던 사무실에서 이따금 글이 너무 쓰고 싶어질 때면, 나는 모니터 귀퉁이에 한글창을 조그맣게 띄워놓고 업무에 임했고, 누군가가 내 뒤를 지나쳐갈라치면 빛의 속도로 해당창을 닫고 업무용 엑셀창이나 각종 공문창들을 화면 가득 띄우곤 했다. 이 모든 것이 일 초 컷이었다.



그러나 분산 근무하는 사무실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곳에서는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기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어느 때인가는 마치 이 상황이 나에게 '글을 쓰라'는 일종의 계시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너에게 병든 목을 주었으되, 대신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내려주겠다'는, 미신적 믿음 같은 것이랄까.



실제로 몇 달간 이어진 분산 근무는 내 글쓰기의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그 시기 내게는 눈앞에 눈치 볼 상사가 없었고, 대신 글쓰기에 최적화된 상황이 펼쳐졌다. 여유로운 사무실 공간. 멀찌감치 떨어져 사무를 보고 있는 직원들이 내는 '적당한 백색 소음'. 그리고 나만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펼쳐 낼 시간.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생각지도 못하게 내게 주어진 기회를 십분 활용해,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짧은 이야기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향한 나의 본격적인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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