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뉴 Nov 27. 2023

월요일을 앞에 두고 쓰는 밤편지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인가 봅니다.

저도 이 나이에 제가 이러고 있을 줄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거든요.

사회가 정해놓은 평범하고 모범적인 삶의 단계를 무난히 밟아 왔고, 그대로 제 삶이 쭉 이어지리라고 생각했어요. 무난한 점수로 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이 부끄러워하지 않을 직업인이 되어, 평범한(?) 남자와 결혼해 토끼 같은 아이를 낳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삶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며 나이 들어가는 제 모습을 그렸어요.



중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학급 친구들 앞에 저를 세워 놓고 '지뉴처럼만 하라'라고 말씀하셨을 땐, 제 삶에서 가장 큰 칭찬을 받은 듯 어깨가 으쓱해져서는, 더욱 선생님 말 잘 듣는, 학교에서 규정한 '모범'의 틀에 맞추어진 학생이 되려 애썼습니다. 나 자신을 그렇게 틀 속에 가두면서 스스로 '잘하고 있다, 행복하다'라고 최면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은 답답해지고 시선은 자꾸만 다른 곳을 향해 가는데, 억지로 끌어다 가둬두려 했으니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 부작용이란 게 좀 뒤늦게 찾아오긴 했지만요.



나름 도전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어요. 첫 직장을 과감히 접고 임용고시를 보고, 그렇게 다니던 학교를 뒤로 하고 또다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해 지자체 공무원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진정한 도전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 요즘 들어 더욱 - 들어요. 삶에서 그나마 제가 가장 자신 있었던 것 중 하나가 시험을 치러 점수를 통해 성공적인 ‘결과물'들을 얻는 것이었어요. 교사라는 신분도 공무원이라는 지위도 결국 그런 범주에 들어갔던 거죠.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단지 착각이 아니었을까, 독립출판의 세계에 발을 디디면서 그러한 생각이 더 짙어지는 것 같아요. 공직의 세계는 어쨌든 '안정성'을 담보하는 곳이고, 결국 저는 안전한 울타리 밖을 넘볼 용기는 내지 못했던 셈이니까요.



처음으로 독립출판을 준비하며 저는 이제야 완전히 새로운 세계의 도전자가 된 기분입니다.

아는 이 하나 없고, 내게 아무런 정보도 없는 외딴섬에 홀로 발을 들인 것 같달까요.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쓰고, 토가 올라올 지경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던 교정교열을 마친 후, 인디자인을 배워 꾸역꾸역 편집을 완성하고, 표지 디자이너를 섭외해서 제 이야기를 예쁘게 포장해 가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의 냉혹함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수습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네요. 그러고 보면, 그간의 저는 안전지대에서 돌봄을 받고 있는 아이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청년의 시기도 훌쩍 지나왔고, 이제쯤이면 안정적으로 사는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어른들 앞에서 저는 자꾸 삐딱선(?)을 타고 싶어 집니다. 억지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시절의 부작용이 이제야 찾아온 걸까요?

아직은 조심스럽지만, 조금씩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는 법을 배우며 언젠가는 그 거친 물결 한가운데에서 저만의 속도와 힘으로 자유로이 서핑해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자꾸만 일어나네요.

이런 제 생각이 씨앗이 되고, 제 열의가 씨앗이 자라는 온기가 되어주어 언젠가는 싹을 틔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마음을, 삶에 대한 열정을 지닌 엄마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요. 아직 제 마음은 식지 않았으니까요.



때때로 나 자신이 외로운 섬처럼 느껴지지만, 나와 비슷한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희망과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외로운 섬에 다리가 하나둘씩 놓이는 것 같았달까요. 그렇게 섬으로 한정되지 않고, 서로에게 연결이 되면 더 많은 이야기들이 생겨나게 되겠지요.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제 앞에 놓일지 지금의 저는 몹시 궁금합니다.

외로운 섬이 아닌

이제껏 목표물을 향해 직선으로 곧게 걸어왔는데, 앞으로는 조금 삐딱선을 타서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만 보고 가지 않고 조금 다른 풍경과 냄새를 느끼면서 간다고 해도,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결국엔 제가 가려하는 곳으로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아니, 어쩌면 더 나은 곳에 도달해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빠르게 뛸 때보다 천천히 걸을 때 주변 풍경이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것처럼, 지름길 같은 직선보다는 삐딱선을 거쳐가는 삶이 더 풍요로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물드는 밤입니다.



문득 '행복이란 OO이다'라고 정의한 누군가의 말이 생각납니다.

행복을 정의할 수 있는 것일까 싶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제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었어요. '행복이란 내 마음과 몸이 여기 같이 있는 것'이라는 말이었어요. 업무를 하면서 괴로운 건, 제 마음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가 있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나를 힘들게 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반복하면서 자꾸만 현실에서 달아나려는 마음말이죠.

저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면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되요. 제 글에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는 너그러운 독자들을 생각하며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그렇고요. 여러분은 어떤 때 몽글몽글한 마음이 되나요?



새로운 한 주가 곧 시작되네요. 이번 한 주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에게 가슴 몽글몽글한 순간들이 많이 찾아오면 좋겠어요. 그 순간들을 기억하며, 또 앞으로 다가올 그러한 마음을 기대하며 우리는 우리의 육체에서 자꾸만 벗어나려고 하는 마음을 붙들어 맬 수 있을 테니까요..



드디어 제 첫 책을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감사하게도 책 구입 경로를 여쭤본 분들이 계셔서 여기에 남겨 봅니다.

앞으로 개별 독립서점에 문의도 드리고 발로 뛰어다녀야 할 텐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마음만 바쁘네요. ㅎㅎ;;

https://indiepub.kr/product/list.html?cate_no=24


매거진의 이전글 이야기가 시작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