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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Jan 15. 2024

유럽인문학을 즐겁게 읽고 싶다면

하광용 작가의 유럽인문학 시리즈 북토크 후기

9호선에 몸을 싣고 선릉역 근처에 위치한 '최인아 책방'으로 향했다.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최인아책방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밤에 열리는 북토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유럽역사문명>을 다 읽지 못했던 나는, 지하철을 내리기 전까지 초단기 집중력을 발휘해 남은 페이지들을 소화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북토크 시작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짝꿍과 나는 선릉역에 내렸고, 제 시간 안에 북토크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제껏 꽤 여러 북토크에 참석했었지만, 이번 북토크는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아는 작가 - 대면한 건 이번이 처음이긴 했지만 - 의 북토크여서 더 기대가 되고 설레는 마음이 컸다.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브런치에 성실하게 몸 담아 온 보람이 농축된 느낌이었달까. 문득, 하광용 작가님과 첫 인연을 맺게 해 준 임윤찬 피아니스트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일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에 관해 쓴 글을 통해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



브런치에서 '마하'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하광용 작가는 지금껏 총 세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그중 최근에 발간한 Takeout시리즈 <유럽예술문화>와 <유럽역사문명>를 토대로 이번 북토크가 진행되었다. Takeout  인문교양 시리즈는, 인문학의 방대한 내용을 다루는 책이라 두께가 꽤 되지만,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알기 쉽게 쓰인 내용 덕분에 인문학을 즐겁고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인문학에 관심이 있다. 삶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인문학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가 그간 접해왔던 대부분의 인문학 서적들은, 나처럼 인문학에 문외한인 독자가 부담 없이 즐기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전문가적인 언어로 집필된 내용은 ‘내 것’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았고, 그렇기에 두꺼운 책의 무게만큼이나 내게 부담스러운 독서 활동이 되었다. 그러나 하광용 작가의 이번 시리즈는, 광고회사에서 오래도록 일해 온 그의 이력 덕분인지, 독자들의 눈높이와 필요에 잘 맞추어진 인문학을 선보인다. 작가 본인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채집한, 현장감 넘치는 인문학 이야기들이, 관련 사진과 (이미지와 영상 자료를 제공하는) 큐알코드와 함께 다채롭게 펼쳐진다.



우리는 그저 자리에 앉아서, 드넓은 세계를 돌며 그가 담아 내온 귀한 이야기들을 통해 편안하게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마음을 도탑게 살찌우면 된다. 왕복 비행기 티켓만 해도 수백만 원이 들어갈 이야기들을 단돈 몇 만 원으로 주워 삼킬 수 있다. 이 얼마나 가성비 훌륭한 체험이란 말인가!




이번 북토크의 주제는, 'If or If not ', 다시 말해, B(irth)와 D(eath) 사이에 있는 인생의 수많은 선택C(hoice)에 관한 것이었다.

본격적인 북토크에 앞서 작가의 지인인, 한 모녀분의 피아노와 첼로 듀엣 연주가 펼쳐졌다. 영화 <시네마 천국>의 메인 테마가 아름다운 선율을 타고, 최인아 책방의 높은 층고 가득 울려 퍼졌다. 흡사 샹들리에를 연상시키는 특이한 천장 조명에서 떨어지는 은은한 오렌지빛깔이, 피아노와 첼로의 선율에 가슴 뭉클해지는 감성을 더해주었다.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 이곳에서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흡사 문학과 음악을 나누기 위한 귀족들의 문화 살롱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피아노, 첼로,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 in 최인아책방

부드러운 표정으로, 물 흐르듯 술술 - 다년간의 강의 활동으로 구축한 내공이 있으신 듯하다 - 강연을 이어간 하광용 작가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언급하며, 인간은 자신에게 최선의 것을 선택하고, 똑같은 상황이 온다 해도 (비록 시간이 조금 지연되는 경우는 있다 하더라도) 결국 동일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원전 49년, 루비콘 강을 건너며 새로운 역사를 썼던 로마의 카이사르가, 그 당시 루비콘 강을 건너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국 후일에 같은 선택을 하게 되었을 거라는, 인문학적 예시를 든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묘하게 설득되었다. 옆에 앉아 있는 짝꿍과, "결국 우리는 짝이 될 운명이었나?!"라고 말하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뒤이어 화면 속에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장면들이 나타났다.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맺어지지 않았지만, 결국 다른 도시에서 서로의 인연이 되고야 마는 운명이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최근 다시 <냉정과 열정 사이>의 OST에 꽂혀있는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영화 속 장면들을 맞았다. 남녀의 애틋한 사랑으로만 비쳤던 러브스토리가, 인문학의 시선으로 보자 또 다른 모습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 와중에 흘러나오는 영화 OST에 마음이 새로이 몽글몽글해졌다. 같은 장면이라도 이렇게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인문학의 깊은 매력이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위) 이탈리아 피렌체를 배경으로 한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한 장면 (아래)가슴을.울리는 영화 OST

북토크는 시간 초과 없이 1시간 내에 끝이 났다. 짝꿍은 '훌륭한 강연자'라며 하광용 작가를 추켜세웠다. 이유를 물어보니, 인문학 이야기를 귀에 쏙쏙 들어오도록 이해하기 쉽게 잘 전해준다는 점과, 무엇보다도, 시간을 끌지 않고 적절한 지점에서 끊어내는, 강연자로서 최고의 덕목을 갖춘 분이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작가가 제공해 준 커피도, 국내최초로 시도되었다는 책표지를 응용한 쿠키도, 내가 섭취한 인문학 이야기만큼이나 다디달았다. 몸은 날렵하게, 마음은 풍만하게 만들고 싶은 나는, 앞으로 하광용 작가의 또 다른 Takeout 인문교양 시리즈를 기대하며, 작가의 소중한 사인을 받은 책을 끌어안은 채, 싸늘한 밤공기에도 포근해진 마음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향했다.

국내최초(!)로 시도된 북토크 쿠키와 쿠키를 탄생시킨 Takeout 시리즈 유럽편

- 이 책을 통해 새로이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 하나,

달력(율리우스력)에 관련된 이야기인데요, 7월(July)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로 '줄리우스 시저'), 8월은 율리우스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 황제'(영어로 'August')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달력 제정자인 율리우스의 생일이 있는 7월을 그의 이름에서 따오고, 전임자인 율리우스의 따라쟁이였던 아우구스투스가 7월 다음인 8월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서 그리 되었다고 하네요. 이러한 연유로, 본디 7월을 뜻하는 라틴어 'septem'월이 9월로, 8월을 뜻하는 'octo'월이 10월로, 9월을 뜻하는 'novem'이 11월로, 10월을 뜻하는 'decem'월이 12월로 밀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들은 '월명'을 헷갈려한다고도 하네요. 우리는 그럴 일이 없지만요.

알고 보면 재미있고, 괜스레 아는 척하고 싶어지는 지식들로 가득한 인문학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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