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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Mar 15. 2024

고등어조림의 극적 변신

공지영 작가의 소설 <고등어>, '푸른’, 그리고 'DHA'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나는 감칠맛 나는 고등어 요리가 떠오르곤 한다.

어린 시절, 고등어가 들어간 조림은 내가 몹시 사랑했던 반찬이었다. 그러나 바다를 끼고 있는 대도시에 살았음에도, 넉넉지 않았던 살림살이 때문에 고등어 반찬은 자주 볼 수 있는 종류의 음식이 아니었다. 고등어의 푸른 등은 흡사 에메랄드 빛 바다를 연상시키는, 그리하여 보석처럼 고급져 보이는 자태로 내게 인식되고 있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나의 아이들은 고등어 반찬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구이든 찌개든 어떤 형태로든. 아이들에게 고등어는, 참치캔 속의 참치보다 맛없고 비릿한, 다소 질이 낮아 보이는 물고기의 한 종류로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내가 아무리 등 푸른 생선의 가치와 효과를 강조하여도, 같이 먹자고 어르고 구슬려 보아도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오기에는 늘 역부족이다. 하지만, 비릿한 것을 질색하는 아이들과 짝꿍이 기거하고 있는 우리 집에도, 나처럼 고등어 반찬에 미각을 내어주는 이가 있으니, 나보다 30년의 세월을 더 고등어와 함께 살아온, 나의 친정 엄마다.




지난 휴일, 텔레비전 화면 속 바다가 나오는 풍경을 보다 무심코 '고등어조림을 해 먹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맥락 같은 건 없었다. 흔히 보는 바다 빛깔에서 어린 시절 좋아했던 등 푸른 고등어가 떠올랐고, 얼큰한 양념장이 벤 조림의 맛이 별안간 혀끝을 감돌았다. 그리하여 나는, 마트에 장 보러 간 자리에서, 실로 오래간만에 빛깔도 선명한 푸른 등의 고등어 한 마리를 야심 차게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백하자면, 나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고 사는 주부다. 내 손으로 김치를 직접 담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결혼 10년을 훌쩍 넘은 지금에도 여전히 칼질이 어설프다. 결혼 초기에는 의욕이 샘솟아, 방산시장까지 가서 온갖 제빵기구들을 구입해 와, 입맛이 꽤 까다로운 큰 이모도 칭찬해 마지않던 크루아상을 구워내곤 했지만, 의지 넘치던 신혼이 지나고 아이 둘 뒤치다꺼리에 지쳐가자, 요리는 점점 내 삶의 뒷전으로 물러났다. 내게 요리는 그저, 한 끼 배를 잘 채울 수 있는 정도의 음식만 조달할 수 있으면 되는 것으로 격하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요리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남아있다. 비록 짝꿍이 계란말이의 달인이 되어가도록 계란프라이만 잔뜩 구워대고 있는 나이지만 말이다. 손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착, 착, 착, 거의 동일한 두께로 채소를 썰어내는 손들을 보면 너무도 경이로워 입을 다물지 못할 지경이고, 하루만이라도 그 손들을 우리 집으로 고이 모셔오고 싶어진다. 아니, 할 수만 있다면 내 손을 떼어내고, 마치 '페이스 오프'하듯 손을 바꿔치기하고픈 심정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문제는 '손'이 아니라 손을 그리 조정하는 '뇌'라는 생각에 이르긴 하지만. 그렇다면, '브레인 오프'를 해야 하는 것이겠다.



요리에 서투르더라도 일단 먹고 싶은 것은 먹어야 하니, 한번 도전해 보자고 요리 재료들을 싱크대 가득 늘어놓는다. 부엌에서 달그락달그락, 부산 떠는 내가 이상해 보였던지, 방밖으로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엄마가 슬며시 문을 열고 나와 부엌을 기웃거리며 도대체 내가 무얼 하려는 건지 묻는다. '고등어조림'을 할 예정이라는 내 말에, 엄마의 얼굴에 의심 가득한 표정이 '스쳐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머물러’ 있다. 그러자 도전의식이 꿈틀거린다. 처음이지만 잘할 수 있다고, 엄마 앞에서 나는 무턱대고 큰소리를 친다.



싱크대 위 낯선 풍경을 내려다본다. 바다를 떠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반들반들한 푸른 등 두 쪽, 묵직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무의 몸통 하나, 그리고 '어남선생'이 일러준 각종 양념들. 여기에 다진 마늘과 대파를 추가한 후, 그 옆으로 어남선생표 레시피가 적힌 창이 열려 있는 휴대폰을 올린다. 자, 모든 것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시작이다.

재료는 준비되었다.
내 스타일대로 썬 무. 다음부터는 이렇게 썰지 마라,라고 의심에 찬 표정의 엄마가 조언한다.

일단, 고등어를 밀가루 뿌린 물에 담가둔다.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서다. 그다음, 부담스러울 정도로 두툼한 무를 썬다. 오래전, 큼지막한 당근을 썰려다 당근 대신 손가락을 자를 뻔 한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어설픈 칼질이 더욱더 조심스러워진다. 도마 위에서는 착, 착, 착, 무가 찰지게 썰려나가는 아름다운 소리 대신, 철컥 철컥, 잘린 무가 향할 냄비가 마치 감옥이기라도 한 듯, 수갑 채울 때와 유사한, 둔탁한 소리가 울려 나온다. 이래서야 저녁 시간 되기 전에 '조림' 구경도 못 하게 생겼다. 써는 속도를 조금 높여본다. 철컥, 철컥 소리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이제 양념장을 만들 차례다. 고등어조림의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단계이니만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시선을 휴대폰 화면에 고정한 채, 어남선생의 안내에 따라 각 양념을 적절히 섞어 맛깔스러운 고등어 조림장을 만들어 낸다. 새끼손가락에 슬쩍 묻혀 맛을 보니 가히 나쁘지 않다. 문제는, 휴대폰 창이 닫히길 반복한다는 것이다. 물기 묻은 손으로 계속 휴대폰 창 비번을 풀려니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짜증이 올라온다. 그렇다고 설정해 놓은 비번 환경을 굳이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양념장을 만들었으니, 이후로는 휴대폰을 보지 않고 ‘내 스타일대로'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처음 하는 고등어조림에 내 스타일이 언제부터 있었을까만은.

보글보글, 고등어조림을 찌개로 변신시킨 물이 끓는다.

그래도 여기까진 그럭저럭 괜찮았다. 결정적인 문제는, 늘 그러하듯, '물의 양'으로 인해 발생한다. 나는 요리를 할 때 물의 양에 집착하는 편이다. 다른 건 몰라도 물만큼은 넉넉하게 맞추는 것을 선호한다. 라면을 끓일 때도, 카레를 만들 때도, 심지어 찌개를 요리할 때도 거의 국이 될 정도로 말이다. 그러지 않고 싶은 순간에도 물을 더 부어 넣고 있는 나를 보면, 이제 거의 습관처럼 굳어버린 것 같다. 전생에 물 못 먹어 죽은 업보라도 있는 걸까. 이런 내가 요리할 때면, 자작하고 걸쭉한 걸 좋아하는 짝꿍은, 불안한 표정으로 물의 양을 감시하고 잔소리 해대기 바쁘다.



역시나, 이번 요리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고등어조림이 될 수도 있었던 요리는 그렇게 고등어찌개로 순식간에 탈바꿈했다. 다행히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고등어찌개를 거부하지 않는 친정 엄마가, 처음 한 것 치고 국물이 맛있다며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감을 북돋워준다. 심지어, 국물에 밥을 살짝 말아먹는 흐뭇한 장면을 선사한다. 내게 다음이 있을지 어떨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처음치고 내 입에도 '맛은' 있는 것 같다.



  "덕분에 배 부르게 잘 먹었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엄마가 마지막으로 던진 한 마디에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러고 보면, 나 요리 못하는 사람은 아닌가 봐."라는 말이 툭, 튀어나온다.


어남선생이 시킨 대로 겨우, 그것도 물양도 제대로 못 맞추고 했으면서, 요리는 무슨.


* 혹시 추천해 주실 만한 반찬이 있을까요? 일품요리도 좋습니다. 요리를 좀 해 봐야겠다는 뒤늦은 자성을 하고 있는 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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