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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Apr 08. 2024

새, 작품

비슷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제법 기분 좋은 틈이 생길 때가 있다. 우리 집에서는 반려조들 덕분에 이러한 틈 속으로 불현듯 유쾌함이 스며들곤 한다. 그럴 때면, '유레카!'라고 외치고 싶어질 만큼, 대단한 발견을 한 기분이 드는데, 우리 가족은 마치 순서가 정해진 듯 돌아가며 이러한 순간들을 맞이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필수 코스처럼 박물관에 들러 미술 작품들을 접하지만,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게 만드는 미술적 지식이나 감각이 많이 부족한 나인지라, 감상보다는 '훑어보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럼에도 여기에 등장하는 세 작품만큼은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어쩌면 내 사후에 이름 석 자를 대신하여 후세에 길이길이 남을지도 모를 작품들을. 훗.

미술 작품에 조예가 있으신 분들의 솔직한 감상평을 기대해 본다.




# 작품 1. 누구냐, 넌?

(위) 작품명: 누구냐, 넌?

기품 있는, '데칼브 엠버링크'종인 김치의 집은 우리 집 안방에 있다. 물론, 그렇다고 김치가 자신의 집에만 머무르는 건 아니다. 일광욕을 좋아하는 김치는, 시간에 따라 집안 곳곳을 옮겨 다니는 빛을 따라 일광욕을 즐기곤 한다. 그럴 때면, 편안한 자세로 흡사 '먹기 좋게 살짝 굽힌, 거대한 치즈 한 덩이'처럼 늘어져 있다. (위의 두 번째 사진)


이와 달리, 사춘기 딸인 네안이는 거의 자신의 방 안에만 머무른다. 그러다 김치의 동태가 궁금해지거나, 하소연을 털어낼 일이 생기면 별안간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와 안방을 찾아온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물속에서 지내는 수륙양용의 생명체가 가끔 뭍으로 올라오듯이 말이다.


첫 번째 작품이 탄생한 이날도, 네안이는 그렇게 안방을 들렀다. 그 순간에 네안이의 시야에 낯선 풍경이, 유레카의 순간으로, 들어온 것이다. (위의 첫 번째 사진)


네안: (먼발치에서) 아빠, 김치가 왜 집 위에 올라가 있어?

짝꿍: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무슨 소리야?

네안: (가까이 다가와서) 앜!! 김치 아니네. ㅋㅋㅋ


네안이가 본 것은, 김치의 집 위에 (짝꿍이 올려놓은) 뭉쳐져 있던 무릎담요였다. 웅크린 김치의 자태처럼 절묘하게 놓여있던 담요가, 멀찌감치 서 있던 네안이의 눈에 순간 김치처럼 보였던 것이다. 재미있는 착시현상에 웃음보가 터진 네안이는, 이내 본인이 자주 사용하는 빨간 도끼빗을 가지고 와서는 위의 사진처럼, 색깔도 선명한 김치의 '벼슬'을 완성시켰다. 무릎담요와 도끼빗의 콤비네이션이 탄생시킨 김치의 도플갱어에 짝꿍과 나, 그리고 네안이는 '김치와 너무 흡사하다'며 만족감이 깃든 웃음 폭풍에 휩싸였고, 곧이어 한 컷의 이미지로 포착해 아들 녀석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그러자 잠시 후, 거실에 있던 아들 녀석이 '김치 사진인 줄 알았잖아!'라고 말하며 슬그머니 웃음보의 행렬에 동참했다.


"이거 유명작가가 전시했으면 수억은 줘야 살 수 있는 작품 같은데!"

"맞아. 어떤 전시 보니까 벽에 바나나 하나 붙여놓고 1억짜리 작품이라고 하는 것 같더라."

내 말에 짝꿍이 맞장구를 쳤다.

마우라치오 카텔란의 바나나 전시

그렇게 탄생한 작품명, '누구냐, 넌?'은, 네안이와 짝꿍의 합작품이다.
실제 김치의 자태와 작품의 형상을 비교해 보며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 작품 2. 망고의 망중한

(좌) 작품명: 망고의 망중한 (우) 투명책갈피로 박제된 풍경

햇빛이 아련한 조명처럼 비쳐드는 휴일 오후. 틈틈이 독서를 즐기는 짝꿍이 소설 속 이야기에 빠져있던 시간, 따스한 햇살을 등에 인 망고의 그림자가 짝꿍의 배 아래로 길게 드리워져 있다. 우리 집 식구 중 짝꿍을 가장 따르는 망고는, 종종 이렇게 짝꿍 곁에 머무르곤 한다. 때마침 망고의 시선이, 짝꿍이 받쳐 들고 있는 책을 향해 있다. 함께 책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해 보이는 것은, 망고가, 자기의 등에 살짝 얹힌 오후의 햇살을, 자신의 발아래에서 가만가만 오르내리는 짝꿍의 배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책을 향해 있던,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망고의 눈이 수시로 감겼다 떠지기를 반복한다. 참을 수 없는 평화로움에 내려앉았던 눈꺼풀이, 이 순간을 담고 싶은 마음에 다시 일어서기를 되풀이하는 걸까. 우연히 배치된 따스한 구도, 빛의 세기와 방향이, 마치 하나의 아름다운 작품처럼 완성된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 사진으로 (투명책갈피)굿즈로 새겼다.




# 작품 3. 베이스 김치

작품명: 베이스 김치

요즘 한창 베이스 기타 배우기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짝꿍. 나중에 브런치에다 관련 이야기를 올려볼까 하여 짝꿍에게 글 대문으로 쓸 만한, 베이스 기타 사진을 멋들어지게 하나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짝꿍이 집안 여기저기에 베이스 기타를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대는 와중에 김치가 난입했다. 그렇게 탄생한 세 번째 작품의 제목은, '베이스 김치'.
의도하지 않았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색감이 베이지 톤인 데다가, 배경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대상이 베이스(기타). 김치의 등에 있는 갈색 무늬가 베이스 기타의 월넛색상과 기막히게 어울리는 조합을 이루고 있다. 거대한 키를 벽에 기대고 서 있는 베이스 기타를 올려다보는 김치의 눈빛이 심상찮아 보인다. 짝꿍이 거의 매일같이 세심한 손길로 다루고, 정성스럽게 관리하는 기타를 석연치 않게 생각하는 듯도 한데.. 어쩐지 김치가 평소보다 고개와 다리를 쭉 늘려 늘씬하게 보이려고 애쓰고 있는 것만 같다.


1. 누구냐, 넌?  

2. 망고의 망중한  

3. 베이스 김치 중,  여러분의 원픽은 어느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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