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모른다. 속담 뒤에 숨어서 우리를 집요하게 지켜보고 있는 시선들이 있다는 것을. 나도 불과 얼마 전까지, 속담이란 그저 이솝우화와도 같이, 우리보다 이 세상을 먼저 살다 간 조상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는 말, 그리하여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요즘 듣기 두려워하는 말은 아래의 표현들이다.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
이런 내 말이 당신은 의아할 것이다. 삶은 넘기 힘든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기에, 아무리 공포스러운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는다면, 당신은 결코 완전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소름 끼치네요!"와 같은 말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누군가도, 현재 지켜지고 있는 자신의 안위에 대해 안도하며, 시간이 주는 망각의 축복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내가 본디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내 남친의 입을 통해 튀어나오는 것들이었다.
"나는 네가 47킬로그램을 유지하면 좋겠어." 따위와 같은.
고백하건대, 문제 상황이 시작된 데에는 내 책임이 크다. 중학교 2학년 이후로 단 한 번도 40킬로그램 대의 몸무게를 가져본 적이 없으면서도, 나는 남친 뿐 아니라 나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47킬로그램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 왜 하필 47킬로냐고?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 사회가 내게, 그 숫자야말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지녀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몸무게'라고 각인시킨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 있을 뿐이다. 나 스스로, 젊지만 아름다움은 부족하다고 늘 생각하고 있기에, 사회가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아름다움을 거짓으로라도 갖고 싶었던 건지도. 짝수보다는 홀수를 좋아하는 내 취향도 조금은 작용했으리라. 언제부터인가 '47'이라는 숫자는 내게 사실처럼 굳어졌다.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 말을 의심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말이다.
이쯤에서 내 소개를 잠시 해야겠다. 내 이름은 케이티(물론 본명은 아니다), 올해 스물여덟, 키 165cm, 몸무게 52킬로그램 플러스 마이너스 알파, 텔레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단발머리의 미혼 여성이다. 취미는 연애. 특기도 연애. 좋아하는 것은 '음식 섭취’. 이렇게 적고 보니 나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인간처럼 느껴져 쓴웃음이 나지만, 현실에서 나는 꽤 괜찮은 여성으로 비치는 것 같다. 특히 이성들에게. 열 손가락으로 세기 힘들 만큼 받아 본 사랑 고백, 일단 시작했다 하면 절대 먼저 버림받는 적이 없었던 내 연애사가 그 증거라면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헤어지자는 내 말에 삶의 의욕을 잃었다며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는 인간까지 봤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서 공짜다운 공짜를 찾기는 어렵질 않나. 이렇게 되기까지 나는 토가 나올 것 같은 역겨움을 견디며 살아와야 했다.
내 삶을 다섯 글자로 표현해 보자면, 말 그대로, ‘구토하는 삶’이다.
주어진 식욕대로 살았다면 나는 지금쯤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말했다시피,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먹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생에서 가장 고귀한 즐거움을 주는 행위이다. 다른 생명들을 희생해서 내 생을 이어가는 것. 죽음의 숭고함을 자양분 삼아 유지되는 생명이, 일상의 지루함을 견뎌내게 하고, 삶에 대한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다른 무엇도 내게 주지 못하는 기쁨을 준다. 그로 인해 나는 더 강한 아름다움을 갈구한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 그것이 내가 이번 생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다. 내가 원하는 아름다움은 내면이 아닌 외면에 있다. 그래서이다. 내가 구토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나는 마음껏 먹고, 끊임없이 토해 낸다. 구토의 괴로움쯤이야 더 큰 기쁨과 만족을 위해 충분히 참아낼 수 있다.
그런 내게 그녀, 만자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만자가 내 앞에 나타난 건 여름이 끝나가던 휴일 저녁이었다. 그날도 나는 한 손으로 변기를 붙든 채, 다른 한 손을 목구멍 깊숙이 찔러 넣고 있었다. 초복, 중복이 지나가도록 무난히 부여잡고 있었던 식욕이 그만 말복에 이르러서 폭발하고야 말았고, 나는 그날 오후에 먹었던 ‘특대 삼계탕’을 열심히 게워내야만 했다. 뭉근해진 닭의 살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쓴 물이 올라오기 시작하자, 구토로 유발된 괴로움이 희석되는 동시에, 이제야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상승하려던 순간이었다.
- 거 참, 더 이상은 눈 뜨고 봐 줄 수가 없네. 아예 그냥 변기통에 머리를 처박지 그래?!
뒤통수 너머로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욕실을 울렸다. 목소리는 마치 드넓은 겨울 벌판에 이는 바람처럼 고고하고 서늘했는데, 다소 경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현과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여름이었음에도 순간적으로 한기가 느껴지며 온몸이 떨려왔다. ‘오늘 너무 심하게 토해냈나?' 몸살을 앓는 이처럼 오한이 들다 못해, 환청마저 들리는 건가 싶어 잠시 후회가 스쳤다. 액체괴물처럼 입가에 눌어붙어 끈적이는 침을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흔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세면대 앞에 섰을 때까지 나는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면대 거울을 마주하고 서서, 욕실 모퉁이에 서 있는 시커먼 형상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 2에서 계속
* 여름휴가 기간 온 가족이 함께 바다 건너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어요. 실로 오래간만에 먼 곳으로 가는 터라 이래저래 마음이 분주하고, 신경 쓸 것도 많은 것 같네요.
잘 다녀와서, 그곳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을 브런치에 공유해 볼까 해요.
떠나기 전에 소소한 납량특집 올려 봅니다. 제 짧은 소설이, 조금이나마 무더위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하루에 한 편씩 총 네 편을 올리되, 댓글창은 첫 편에만 열어 놓을게요. 후기 달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들 즐거운 여름휴가 보내시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