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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 혹은 존댓말

과거 지향적인 한국식 언어문화

by 지뉴
엄마, 놀이터에서 나보다 나이도 어린애가 자꾸 나한테 까불어!!


놀이터에서 돌아온 아이가 씩씩대며 말했다. 이 말을 했던 당시 내 아이의 나이는 무려(!) 일곱 살이었다.

"동생이 몇 살이길래?" 내가 물었다.

"여섯 살 이래!"

아이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었다는 표정으로 미처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채 대답했다. 기가 차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여섯 살이나 일곱 살이나, 내 눈엔 그저 아기처럼 보이는데 저렇게까지 화를 내는 아이 모습에 어이가 없고 한편으론 귀엽기까지 했다...가 슬며시 걱정이 밀려들었다.

화가 난 이유를 묻자 아이는 내게, 이제 겨우 여섯 살인 동생이 자기한테 형이라고 부르지도 않고, 심지어 자기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고 자꾸 본인의 의견을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나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군대에 가려면 아직 십몇 년은 더 있어야 할 아이가 벌써부터 군대에서나 잡을 '각'을 세우려 들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아이를 그런 가정문화 속에서 키우지 않았는데 아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저런, 내가 사라져야 할 '악습'이라고 생각하는, 위계질서 잡으려 드는 '꼰대 문화' 마인드를 배워온 것일까? 아이 평생 접해온 사회 집단이라고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전부일 텐데, 그렇다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까지 이런 썩어 문드러진 문화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말일 덴데. 이거야말로 심각한 일이다,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첫 만남에서 다짜고짜 나이부터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이 상당히 무례하게 느껴진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일단 위계서열을 정해, 상대방에게 호칭을 어떻게 할지, 반말을 할지 존댓말을 할지 정하고 싶어 하는 심리에서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내가 언니 혹은 누나라는 게 확인되면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 그럼 말 편하게 해 주세요."

그들이 편하게 해 달라는 말은, 자신한테 말을 놔 달라, 그러니까 반말을 해 달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내가 계속 존댓말을 하면 혹시 내가 잘 못 알아들었나 싶은지 다시 한번 얘기한다.

"그냥 편하게 말 놓으셔도 돼요."

그럼 내가 말한다.

"난, 이게 편해서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잘 모르는 상대방에게, 상대는 내게 존댓말을 하는데, 단지 내가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 하나로 반말을 하는 게 불편하다.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반말로 하는 게 편할 거라고 생각하는 이런 분위기가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나보다 나이가 많은 혹은 내 또래의 사람들도 아닌, 나보다 한참 어린 20대, 심지어 10대 아이들이 갖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생각과 태도 때문에 직장에서건 어디서건, 아래(?) 사람은 윗(?) 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할 수 없는 문화가 우리나라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리라.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나는 우리나라의 존댓말, 존칭과 강력한 위계질서로 점철된 문화가 불편했던 것 같다. 그즈음 아빠는 내게 아빠와 엄마에게 존댓말을 쓸 것을 강요하기 시작했는데, 난 아빠의 갑작스러운 그런 요구가 불편하고 부당하게 느껴졌다.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는, 한 학년 차이에도 선배랍시고 각 잡고 어른인 척 구는 아이들을 보면, 복도에서 선배들을 마주치면 선생님들에게도 하지 않는 90도 인사를 당연시하는 장면을 접하면 참으로 눈꼴셔 보였다. -물론, 신입생 주제에 겉으로 표현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강산이 몇 번은 변하고 내가 교사의 입장으로 다시 학교 현장으로 돌아갔을 때, 여전히 복도에서 선배들에게 일본인들이나 할 것 같은, 허리를 완전히 접은 채 90도 인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이건 뿌리부터 뭔가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문화를 만든 원인은 도대체 무얼까?

일단, 존댓말과 반말이 확실히 구별되는 우리나라 말이 문제이다. 거기에다 복잡한 각종 호칭들도 한몫하고 있다. 형, 누나, 언니, 오빠... 까진 그나마 괜찮다. 그런데 결혼 문화권에 들어오게 되면 이 호칭은 실로 골 아플 정도로 복잡해진다. 아주버님, 도련님, 형수, 동서, 아가씨, 올케, 새언니, 처형, 처남, 매형... 이런 우라질, 거짓말 조금 보태서 족히 삼십 가지는 되는 것 같다. 거의 마인드맵 수준으로, 위계질서 확실히 나뉜, 그림을 그려야 제대로 익힐 수 있는 지경이다. 이런 호칭들을 만들어낸 자의 멱살을 잡고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주고 싶다. 결혼을 위해 우리나라로 오는 외국인들을 뜯어말리고 싶다. 이렇게 계단식으로 정열 되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대리, 차장 같은 직함으로 부르지 못하는 사회관계를 접하면 곧잘 상대방을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뭉뚱그려 부른다. -. 교사 생활 접은 지가 언젠데 왜 자꾸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지 참.. - 심지어 주민센터에 신규 주민증을 발급받으러 온 고등학생에게마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직원들도 봤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한국에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참으로 많다 싶을 거다. 나는 조선시대에서부터 내려왔을 이런 '고대 화석' 같은 호칭에 거부감이 든다. 그래서 신랑 쪽 가족들을 만나면 머리를 굴려 가능한 호칭을 생략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일제강점기부터 내려온 일본식 문화와 더불어 우리나라 군대문화도 크게 한 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 잡는 위계질서 문화 하면, 사무라이 문화가 뿌리 깊은 일본이 원조가 아닐까 싶다. 일본 드라마나 정치 뉴스를 보면 고개가 땅으로 처박히지나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인사하는 인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결국 우리나라 군대문화라는 것도 박정희(다카기 마사오)가 추앙했을, 일제강점기의 일본식 군대 문화에 그 뿌리가 있을 것이고, 이런 문화를 내면화하고 있는 어른들이 자신도 모르게, 혹은 의도적으로, 아이들에게 그것을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에 머무르는 1년 동안 내가 편안하고 자유로웠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존칭, 존댓말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서양 문화를 딱히 선망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서양 문화가 바로 나이와 상관없이 서로를 이름으로 불러주는 거다. 그 당시 나와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었다. '헬가(Helga)'라는 이름의 독일 출신 여성이었는데 나이가 나보다 40살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서였다면 절대 친구가 될 수 없었을 우리는, 그곳에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며 좋은 친구로 지냈다. 우리는 타국에서 살아가는 같은 외국인의 입장에서 서로 공감하며 많은 얘기들을 나눴고,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녀와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 속에서 나는 내 또래 친구들에게서 얻기 힘든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아마도 내가 그녀를 한국에서 알게 되었더라면 그녀와 함께 나눴던 많은 부분들을 놓쳤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그녀는 나보다 한참 더 나이 많은, 그래서 존중받고 대접받아야 마땅한'어른'으로만 남아있었을 테니 말이다.


모차르트가 베토벤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았다는 사실은 역사 속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역사 속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그들이 동시대를 살아간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얼마나 영향을 주고 교류하며 의미 있는 관계로 남았느냐 하는 점이다. 그런 관계를 엮어나가는 데 있어 존칭과 존댓말로 굳건히 유지되고 있는 한국식 엄격한 위계질서 문화는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위계질서를 나누는 언어적 장벽으로 인해 동시대인으로서 나눌 수 있는 많은 부분들이 장애물에 가로막히고, 묻히고, 안타깝게도 결국은 도태되어버린다.


'한글'은 21세기 디지털 문화에 최적화된 언어이지만, '한국식 언어문화'는 21세기를 완전히 역행하는 산물이다. 해서, 21세기에 태어나 생의 대부분을 21세기에서 보낼 내 아이에게 20세기에서 온 나는 말한다.


OO아, 나이 차이는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동생에게서 배울 것이 있을 수도 있는 거야. 형 소리 좀 안 하면 어때? 그냥 친구처럼 지내면 되지... 어차피 우리는 같은 시대에 지구에서 같이 살아가는 친구들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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