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친구가 몹시 그리워질 때가 있다. 전화 한 통 건네면 슬리퍼에 늘어진 운동복 차림으로, 근처 편의점에서 스스럼없이 만날 수 있는 친구가. 편의점 앞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 한 캔에 오징어 한 마리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수다삼매경에 빠질 수 있는 친구가. 고단했던 일상에 서로 아낌없는 위로와 격려를 주고, 책과 음악, 사회적 이슈 등 장르를 넘나들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운 좋게도 나와 오랜 동거를 하고 있는 짝꿍과 대화친화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만, 항상 곁에 있는 이에게선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불현듯' 연락해도 만나서 이런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친구가 나는 그립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 그 많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타 지역으로 학교를 와서 직장을 갖게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내 가정을 꾸리다 보니,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친구들과 조금씩 멀어져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서로의 생일이 오면 잊지 않고 축하해 주고, 일 년에 꼭 한 번씩은 얼굴 보았던 친구들도 지금은 만나지 못하고 있다. 변한 건 세월인데, 마치 친구들이 사라진 것 같은 생경한 기분이 들 때면 나는 SNS를 열어 친구들의 소식을 곱씹어 본다.
며칠 전, 지자체 근무시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보내온 사진 속에 적힌 문구가 새삼 마음에 와닿는다.
'어른에게도 방학이 필요할 때, 당신을 위한 책장'.
구청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는 몇 달 전 새로 간 부서에서 큰 부침을 겪고 있는 중이다. 업무의 고단함은 둘째치고 인간관계에서 받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도 커, 몸까지 아픈 상태가 되어 조만간 휴직을 계획하고 있단다. 뒤늦게 알게 된 친구지만, 그녀는 좋은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잊지 않고 내게 소식을 전해주는데, 나도 일상이 출렁일 때면 제일 먼저 그녀가 생각난다. 휴직까지 하루하루를 이 악물고 버티며 살아가고 있을 친구가, 가족들과 책에 둘러싸여 행복해하는 모습이 그려져, 덩달아 나도 마음이 몽글해져 오랫동안 사진을 들여다보게 된다.
문득 지자체를 그만두고 나올 때 받았던 메시지들이 생각난다. 일면식도 없는 직원들이 내부 메신저를 통해 이런저런 질문과 말들을 건네왔는데, 개중 두 메시지가 아직도 내 마음 깊이 남아있다. '너무 힘들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떠나는 건지 궁금하다'라는 메시지 하나, 이제 이곳을 벗어난 '(내가) 자유로이 훨훨 날아가기를 바란다'라는 메시지 둘. 어찌 보면 서로 다른 결의 문장인 것 같지만, 결국 그 안에는 버티고 견뎌내는 그들 삶의 고단함이 오롯이 녹아있었다. 그 마음을 차마 어쩌지 못하고, 얼굴 한번 본 적 없고 말 한번 나눠본 적 없는 이에게 작별인사를 건네주었던 것이다.
친구가 말했다. 이제 내게 맞는 인생을 찾아가고 싶다고. 나도 그런 생각을 하며 그곳을 빠져나왔던 것 같다. 누군가가 그런 인생을 찾았냐고 내게 묻는다면, 아직은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는 없을 듯하다. 나도 여전히 내 인생을 찾아가는 중이고, 그래서 여전히 방황 중이고, 이따금 자유롭고 행복하고, 그 이상으로 길을 헤매고 다니며 불안해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 모든 게 내 선택이 이끈 삶의 방향이고 길이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고. 괴테의 말처럼 지향하는 삶이기에 방황하고, 나는 그런 삶이 진짜 삶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불안하고 방황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가슴 두근거릴 일이 많은 삶이 지금의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라고. 그 삶을 향해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이번엔 페이스북 계정을 들여다본다. 바다 건너 저 멀리에서 파올라가 전해주는 소식을 되새겨 보고 싶어졌기에. 내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 것은 오로지 그녀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어학연수 시절 홈스테이 친구였던 파올라는 남부 이탈리안인답게 늘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적이었다. 덕분에 우울한 스코틀랜드의 날씨 따위는 내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우리는 늘 조금 들떠있었고, 무슨 일이든 함께 나누려 했었고, 십 대 후반과 이십 대 초반의 극청춘의 시기가 즐거움과 열정으로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고 또 닦았다. 그때 그녀와 함께 느꼈던 열정의 온도가 높았기에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서로의 소식을 공유하며 지내고 있는 게 아닐까.
타인들과의 교류에 진심인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그녀의 초대를 받아 짝꿍과 이탈리아로 배낭여행 겸 신혼여행을 떠났을 때, 짝꿍과 나도 그러한 감정을 느꼈었던 것 같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오가는 이탈리아 방식의, 손짓에 어우러진 강렬한 남부억양의 대화들이 마치 폭죽처럼 그들 사이를 오갈 때, 처음엔 적응이 잘 되지 않다가,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그 안에서 함께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고 있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이 자리에서 짝꿍은 ‘브루스 리’라는 별칭을 얻었다)
평소 대화할 때도 무대 위 배우처럼 말을 하던 파올라는 지금 배우가 되어 무대 위에서 그녀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녀는 말한다. '연기는 내 가슴을 뛰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 페이스북에 하루에도 몇 장씩 올라오는 그녀의 사진들을 보면 그녀의 말이 사실임을 실감하게 된다. 무대 위의 그녀는 내가 알고 있던 그 어떤 순간의 그녀보다 자신감이 넘치고 행복해 보인다. 먼 길을 돌아 진정 자신을 위한 자리를 찾은 그녀를 보며 나도 용기를 얻는다. 방황을 두려워하지 말고 즐겨보자는 마음이 된다. 그리고 상상해 본다. 아이 엄마가 된 우리가, 스무 해도 넘는 세월을 지나 둘이 아닌 여럿이 되어 이탈리아에서 재회하는 장면을.
SNS로 전해지는 친구들의 소식을 보며 즐거워하지만, 결국에 나는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건 아마도 쏟아지는 전자책들에도 결코 종이책을 포기할 수 없는 내 마음과 같은 것이리라. 친구들의 눈을 직접 마주하고, 때론 침을 튀기며 대화를 나누며, 이따금 어깨를 톡톡 쳐가며 함께 웃음소리를 공유하는 그 시간이 내게 온기 어린 에너지를 주고, 한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성장하고 나이 들어갈 수 있게 하는, 인생이 내게 주는 선물일 테니.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는 브런치 글벗들과도 그런 만남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