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전히 이 공간에는 빛이 들지 않는다. 단순히 날씨 탓이라고 하기에는, 날씨와 상관없이 이어지는 매일의 일상이다. 환기가 잘 되지 않는 공기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나는 듯하고,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그저 회색빛 콘크리트 벽뿐이다. 저 벽 너머에는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양의 교실들이 옹기종기 자리 잡고 있다. 지금 나는 교무실 책상에 앉아, 창 가까이에 우뚝 들어서 있는 건물 벽을 바라보며, 저 단단한 벽 위에 그림을 그리는 상상을 하고 있다.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희망처럼 벽에 그려졌던 나뭇잎 같은 그림을 말이다.
현재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도시 변두리의 한 사립중학교다. 사립학교에서 근무하기는 이번이 처음인데, 공립학교에서의 짧지 않은 경력에도 여기 학교에 적응해 근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우연히 기회가 닿아 오게 된 여기에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묘하게 낯선 풍경과 분위기, 인물들에 불안감과 동시에 호기심에 빠져들곤 한다. 교무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순간 급격히 피로감이 몰려들 정도로, 이 공간 자체가 고역처럼 느껴지기도.
단순히 병가에 들어간 줄 알았던 교사는 비밀에 부쳐진 사건에 연루되어 도망가다시피 학교를 떠난 것이었고, 소녀처럼 생글생글 미소 짓는,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 관리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교사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는 눈치인데, 지금 이 시간 가시 돋은 눈빛으로 사악한 표정을 그리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내 상상이 비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모습일지도 모르나.
앞에서는 마치 아무 일 없었던 듯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뒤로는 꽤나 무시무시한 사건 사고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기괴스러운 기분을 차마 떨쳐버릴 수 없는 이곳. 며칠 전 전해진, 사립학교에 다니는 세 여고생의 충격적인 뉴스가 이런 내 기분을 더욱 극한 지점으로 내모는 것 같다. 그나마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내가 여기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교사의 사진을 불법촬영해 SNS에 올려 인격모독을 한, 조만간 출석정지를 당할 예정이라는 여학생의 평소 얼굴은 너무나도 해맑고, 매일같이 청소를 하라고 하면서도 각 교실마다 물걸레의 행방은 묘연하다. 어둑한 교실 구석구석 날파리의 알들을 불러 모으는 먼지와 쓰레기들은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켜켜이 쌓여가지만, 이곳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야 하는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별 효력 없어 보이는 비질이나 해대는 것이다. 내가 임시로 맡은 학급의 맞은 편도 다른 건물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채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교실은 조명이 켜진 상태에서도 늘 천장 위로 구름을 잔뜩 이고 있는 것 같은 모양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의 낯빛이 어두워 보이고, 집중력은 이토록 떨어져 보이는 연유가.
지금 내가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은, 큰 탈 없이 이곳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다시 양지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학생들과 학부모가 무시로 교사를 교육청과 국민신문고의 난장에 올리고, 그렇게 대중의 도마 위에 올려진 교사는 학교 현장을 떠나고 싶을 만큼 너덜너덜하게 난도질당하는 이곳에서, 무사히 원래의 위치로 회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축제의 잔을 들어도 될 지경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위해서는 하고 싶지 않은 일도, 어느 정도의 괴로움도 인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지만, 근래 내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사실은, 헤어진 옛 연인과 다시 만남을 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큼이나, 스스로 박차고 나간 직업 현장에 되돌아오는 것은 피해야 할 일 중 하나라는 것이다. 용기를 내어 버리고 떠난 곳에는 자신이 미처 생생하게 인지하지 못한, 자신과 그 공간이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들이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내가 학교 현장을 떠났던 건,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었던 신체적 결함과 더불어, 고단함과 힘듦을 넘어서는 고통과 괴로움의 영역에서 벗어나고픈 열망이 컸기 때문이거늘, 지난 몇 년의 세월 동안 그 사실은 잊어버리고, 알량한 미련을 나는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이 먹도록 배운 재주라곤, 경제적 산출로 이어지는 능력이라고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거의 전부에 가까우니, 미련을 말끔히 떨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음습한 공간과 이곳의 다양한 군상들에서도 분명 내가 배울 점들이 있을 거라고. 지금 여기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나중에 나의 이야기에 좋은 자양분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다짐한다. 도마 위에 올라 타인의 입김에 부서지고 넘어지는 사태만큼은 온 힘을 다해서 피하겠다고. 이러한 위기감과 비장함이, 아이들과의 소통과 교류에서 얻게 되는 즐거움과 보람을 넘어선 학교 현장에서는, 오늘도 배움의 공간 너머 스펙터클한 뒷 풍경들이, 때때로 격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