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을 갈망하며...
드디어,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템플스테이'의 꿈(?)을 실현하게 됐다. 일에 치여 하루하루 전쟁터 같은 삶을 살아내고 있는 전 직장 동료 H에게 잠깐의 숨 돌릴 틈을 주고 싶었다. 물론, 나 자신도 '산사에서의 하룻밤'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국거리 속에 투척되는 고기처럼 몸이 갈려나가는 것 같은 직장생활을 '존버'해낸 내게도 심신의 휴식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템플스테이를 며칠 앞두고 문제가 생겼다. H가 집안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잠깐 고민이 됐다. 홀로 지낼 산사에서의 하루는 너무 적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어되는 행위들을 의미 있는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내 성향이 이 순간에도 발동되었다.
나는 간단하게 짐을 챙기고 홀로 운전대를 잡은 채 겨울의 끝자락에 서있는 산사로 향했다.
시 경계를 넘어 10여분을 더 가다 주택가가 있는 골목을 올라가니 북한산 자락에 고즈넉하니 자리 잡고 있는 산사가 눈앞에 드러났다. 마치 속세와 극락을 구분 짓고 있는 듯한 '불이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곳에서 내 생애 첫 템플스테이가 시작되었다.
깊은 가을 하늘만큼이나 청량했던 하늘을 배경으로 나를 맞이하는 불이문으로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올라가려니, 걸음마다 속세에서의 근심과 때가 한 꺼풀씩 벗겨지는 듯했다. 절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에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입구를 통과해 사무실로 보이는 곳에 들어서니 나 말고도 서너 명의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더 있었다. 잠시 후 담당자가 나타나 신분확인을 한 후 간단한 안내사항들을 알려주고는 '법복'을 나누어줬다.
내가 머물 곳은 세 평 남짓한 아담한 방이었다. 짐을 풀고 법복으로 갈아입은 뒤 첫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까지 잠깐의 시간 동안 맞은편 벽을 보며 '벽멍'을 때렸다. 속세의 내 방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이곳의 벽. 벽마저 단아한 모습으로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는 듯했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하얀 도화지 같은 벽을 바라보며 템플스테이 기간만큼은 나도 '일시적 무소유의 삶'을 실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3시 30분, 강정 만들기
고즈넉한 산사에 강정 만드는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보살님 한 분이 강정 만들기 시연을 해 보이셨다. 하나의 강정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식용유, 설탕, 튀긴 곡식, 조청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비율이다. 너무 달거나 끈적하게 들어붙는 게 싫어서 평소 강정을 별로 즐겨 먹지 않았는데, 다행히 이곳에서는 지나치게 달지 않고 끈적이지도 않는 담백한 비율로 강정을 만들었다. 보살님이 알려주신 대로 만든 강정을 한 입 베어 물어보니 맛이 기가 막혔다. 직접 만든 강정들을 집으로 싸들고 가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불과 몇 분 전 나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해 보리라 다짐했는데, 오랜 세월 세속에 찌들어있던 내 인내심은 왜 이다지도 가벼운 건지…. 머리와 마음과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체험자들이 만들어낸 강정들을 담은 봉지가 하나 둘 늘어갔다. 봉지의 개수가 늘어갈수록 흐뭇한 마음이 들었지만 팔이 빠질 것 같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칼로 강정을 잘라내는 일에 적지 않은 힘이 들어가서였다. 강정 만들기가 '노동'이 되기 시작하자 점점 무념무상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살님이 하는 말씀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 … 저희가 원래 강정을 팔 생각이 없었는데, 여기 오시는 보살님들이 돈을 지불하시겠다고 자꾸 팔라고 요청하시는 바람에 요즘은 강정 판매도 조금씩 하고 있어요…."
한 봉지에 만원씩에 판매된다고 하는 말씀에 속세에 찌든 뇌가 잽싸게 돌아갔다. '이거, 부업으로 하면 꽤 쏠쏠하겠는데….'
강정 만들기가 끝나갈 무렵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체험자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살면서 수많은 눈들을 봐 왔지만 왠지 생애 첫눈을 맞이하는 느낌이었다. 이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것 같은 모습으로 내리는 눈…. 산사 밖에서 내리는 눈을 보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너무 많이 와서 비상근무 걸리면 안 되는데, 차 막히면 어떡하나, 아이랑 나가서 눈사람이라도 만들어봐야 하나...' 그런데 이곳에서 맞이하는 눈은 그 자체로 그저 고요하고 아름답기만 했다. "우와!" 하는 감탄만 나올 뿐 별다른 잡념이 들지 않았다. 눈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내 마음이 고요해서였을까?
'눈멍' 타임―산사에서는 '멍'을 때릴 기회가 참 많은 듯하다―이 지나자 보살님이 말씀하셨다.
"체험할 때 이렇게 눈 내리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여러분들이 운이 좋으신 거예요…. 방으로 돌아가실 때 강정 한 봉지씩 챙겨들 가세요…."
보살님 말씀에 갑자기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오후 5시-7시, 저녁 공양 및 저녁 예불
강정을 너무 열심히 만든 탓인가, 배꼽시계가 일찍 울렸다. 보살님의 안내에 따라 체험자들이 '공양간'이라고 적힌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소박하지만 맛깔스러워 보이는 저녁 메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토록 단출하고 정갈한 한 끼라니…! 고기 한 점 찾아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침샘이 격하게 반응했다.
사찰에 오면 꼭 한 번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발우공양' 순서 중 하나이던가? 한 끼 식사를 다 마치고 나면 남겨둔 김치 한 점을 숭늉에 담가 젓가락으로 짚어 천천히 돌려가며 그릇을 닦아내는 행위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사찰 문화도 많이 바뀌었는지 평소 집에서 하던 설거지와 별반 다르지 않게 식사 후 수세미와 주방세제로 각자 설거지를 진행한다.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과연 내가 그릇 헹궈낸 물을 마실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들기는 했다.
저녁 공양후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진 후 본존 불상이 모셔져 있는 극락전으로 향했다. 빛이 채 스러지기 전, 산사는 어둠을 맞이할 채비를 하는 듯 갖가지 색의 연등에 불을 밝혔다.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연등들을 바라보자니 맘이 환하고도 평화로워졌다. 본존불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단아해졌다.
저녁 예불은 약 한 시간 가량 이어졌는데, 스님의 염불 하는 소리에 맞춰 함께 앞에 놓인 불교 경전을 읽고 불교식 절을 했다. 분명히 한글로 적힌 글인데 무슨 말인지 통 알지 못할 불교 경전을 따라 하고 있자니 슬슬 지루해지려는 찰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옴마니 반메 홈…'이라는 익숙한 경전 문구가 눈에 들어와 화들짝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불교 경전은 대체로 '산스크리트 어'로 되어 있다고 한다.
절을 백 번은 넘게 한 것 같다. 다행히 딱히 믿고 있는 종교가 없어 절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별로 없었다. 아니, 오히려 마음이 단순해지고 또다시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어서 좋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목탁 두들기는 소리와 스님이 염불 외는 소리를 좋아하기는 했다.
저녁 예불을 마치고 극락전을 나서자 산사 가득히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처마 끝 풍경 소리가 어둠이 깔린 풍경 속으로 은은히 울려 퍼졌다. 오감을 어루만져주고 이 세상 온갖 걱정거리들에 찌든 마음을 깨끗이 씻어내주는 듯한 소리가….
저녁 7시 30분 스님과의 차담
스님이 직접 우려내는 생강차를 실시간으로 맛보며 한 시간 여의 차담이 진행되었다. 생강차의 따뜻한 기운과 향이 몸속 가득히 스며들었다.
보살님의 말씀에 의하면, 차담에 참여하는 체험자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스님이 과연 무슨 말씀을 하시나 한 번 지켜보자, 하며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는 사람.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대화를 주고받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화보다는 제공되는 차와 주전부리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이는 사람. 나는 두 번째에 속했던 것 같다. 묵언 수행하듯 어색하게 이어지는 차담 분위기를 쇄신해보고자 했던 스님의 농담에 불만을 제기했던 체험자들이 있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농담하고자 애쓰는 스님을 보면 내 마음이 더 불편해질 것 같았다.
나는 스님께 불교에서 얘기하는 '업보'에 관해 질문을 드렸다.
“스님, 세상만사는 다 업보에 의한 것인가요…?”
스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인'과 '연'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세상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더니 찻상 옆에 꽂혀 있던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시더니 내게 질문하셨다.
“이 연꽃은 원래 있었던 건가요, 없었던 건가요?"
"… 씨앗이 자라고 꽃을 피워 연꽃이 생긴 거겠지요."
“네 맞습니다. 세상만사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지요. 연꽃의 씨앗이 '인'이라면 거기에 어떤 '연'이 작용해서 결과인 연꽃이 탄생하는 겁니다. 그럼 그 '연'에 해당되는 것이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 햇빛과 바람과 비 아닐까요…?"
"네 그렇지요…. 그렇다면 연꽃은 원래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씨앗 속에 연꽃이 되기 위한 존재가 품어져 있었겠죠…."
"네, 그것도 맞습니다. 그럼, 이 연꽃의 형태는 원래 있었던 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아, 이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스님의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유전자'나 '진화' 같은 현대 과학적인 말들로 답했고 스님은 내 대답에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되풀이하시더니 결국은,
"있지만 없는 것, 없지만 있는 것들이 있지요…."라는, 내 주제로는 도저히 파악 불가능한 말씀을 던지셨다. 문득 얼마 전 읽었던 소설 『태백산맥』에 인용된 ‘반야심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형태 있는 것이 곧 헛것이요, 헛것이 곧 형태 있는 것… 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실체가 없어서 생겨나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하며, 더럽지도 아니하고 깨끗하지도 아니하며, 또한 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아니한다…."
그렇다면, 다이어트하느라 줄었다 야식으로 다시 늘어난 내 살들도 실체가 없어서 실상은 늘지도 줄지도 않은 것인데 다만 내 생각과 눈이 그리 보고 있다는 말인 것일까? 그런 것이라면 세상만사 집착할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차담을 마치고 돌아와 홀로 앉은 방 안. 마음은 고요했지만 머릿속은 스님이 던져주신 '화두'(?)로 분주했다. '있지만 없는 것, 없지만 있는 것…' 한동안 내 일상의 화두가 되어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밤 10시.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려오는 고요한 바람소리에 마음을 맡기고 잠을 청했다.
새벽 4시 도량석
나는 철저히 야행성 인간형이다. 그런 내가 새벽 4시에 눈을 번쩍 뜰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그게 가능했다. 그것도 목탁소리 몇 번에. 새벽어둠을 가르고 바람소리에 실려와 귓전에 울리는 청아한 목탁소리에 뒤척임 한번 없이 벌떡 일어났다. 새벽 '도량석'을 체험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었나 보다.
도량석은 새벽 예불이 있기 전 도량(사찰 주변)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 행하는 일종의 불교의식이다. 새벽에 목탁 소리와 함께 사찰 구석구석을 천천히 돌며 만물을 깨우고 잡귀를 몰아낸다고 한다.
법복을 주섬주섬 입고 목탁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스님 한 분이 목탁을 치며 천천히 걷고 계셨고 체험자 한 분이 합장을 한 채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다른 체험자들은 일어나질 못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줄에 합류했다. 평소 걸음걸이의 3분의 1 정도 되는 속도로 사찰 내를 크게 한번 돌았다. 새벽 산사의 추위 때문인지 도량석 때문인지 정신이 맑아졌다. 스님이 던져주신 어젯밤 화두가 다시 생각났다. 그리고 때 이른 배꼽시계가 또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산사의 아침 공양은 새벽(?) 6시에 시작된다.
오전 7시 30분 염주 만들기
템플스테이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염주 만들기는 보살님 한 분과 도량석에 참여했던 다른 참가자와 나, 이렇게 셋이 함께했다.
나는 알이 크고 단단해 보이는 대추나무를 선택해 염주를 만들기로 했다. 이곳의 상서로운 기운이 함께 엮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 알 한 알 찬찬히 엮어나갔다. ―이 사찰은 약 천년 전 상서로운 기운을 따라온 스님의 발길이 마지막으로 멈춘 터 위에 지어졌다고 한다― 염주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염주 하나를 완성한 후 30분 넘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살아가는 이야기, 사찰에 관한 일상적 뒷 이야기 등. 옆의 체험자 분은 두 번째 템플스테이 참여인데, 체험을 통해 힐링을 하게 된다며 앞으로 계속해서 다른 사찰의 템플스테이도 참여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예전에 템플스테이 했던 사찰도 참 좋았노라며 나에게 추천을 해 주었다.
오전 10시 퇴실
직접 만든 염주를 손목에 두른 채 방 정리를 하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눈 내린 후 아침 산사의 공기가 더없이 맑고 상쾌했다. 집으로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사찰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 절 입구로 향했다. 절로 들어올 때 '불이문'이었던 그 문에 '해탈문'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었다.
보는 방향에 따라 '불이문'이 될 수도 '해탈문'이 될 수도 있는 문. 순간, 우리 인생도 이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문을 나서면 다시금 삶의 소소한 것들에 집착하고 싶어질 테지. 그렇지만 나도 '해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삶을 살아 내리라!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번 더 마음을 다져본다. '그래, 하트 개수에, 댓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브런치 작가가 되리라…!!'
p.s. 염주에 상서로운 기운을 담아 왔던 걸까? 템플스테이 직후 도전한 '브런치 작가 신청'에서 합격의 기쁨을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