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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뉴 Apr 22. 2022

돈을 불러들이는 나무?

일주일 동안의 자택 감금 기간을 무사히 마친 어느 날, 흐드러진 벚꽃들 위로 쏟아지는 봄햇살에 도저히 집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역시 사람도 광합성을 하며 지내야 하는 건가 보다. 햇볕을 제대로 보지 못한 몸이 밖으로 밖으로 나가자고 아우성을 쳐댔다.  결국 '셀프감금'의 고된 기간을 의지하며 함께 견뎌낸 짝꿍과 함께 추억의 장소로 브런치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시원하게 뻗은 자유로를 신나게 달려 파주에 위치하고 있는 한 브런치 카페에 도착했다. 우리는 예전에 맛보았던 브런치와 샐러드 세트를 시켜 한동안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미각의 자유를 한껏 맛보았다. 이미 먹어본 메뉴였지만 이 날따라 빵 한 조각, 샐러드 한 입이 어찌나 환상적일 만큼 맛나게 느껴지던지…. 인간에게 '자유'란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허기를 채우자 봄햇살을  맞으며 자유롭게 걷고 싶어졌다. 우리는 오래간만에 손을 꼭 잡고 아직 인적이 드문 길을 천천히 걸었다. 예술인의 거리답게 가게마다 눈에 담고 싶은 물건들이 시선을 끌었다. 그러다 한 가게 앞에서 둘이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그곳에는 따스한 봄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금빛으로 출렁이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우와!"하고 감탄사가 절로 흘러나왔다. 물론 그림 속 나무가 예쁘기도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날의 자유와 ‘따스한 바람'과 벚꽃만큼이나 풍요롭던 봄햇살 덕분에 우리의 마음에 가득했던 행복의 기운이, 그림 속 나무를 바라보던 우리에게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그 순간 그림과 우리의 인연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가게 사장의 말 한마디에 우리는 이 녀석을 집으로 데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장이 말했다. "돈나무라고, 돈을 불러들이는 나무입니다...." 봄햇살을 마음껏 불러들이는 금빛 찬란한 잎들이 우리 눈에는 정말로 돈을 불러들일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돈나무와 함께 다시 길을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고급진 분위기의 와인가게가 눈에 띄었다. 평소 함께 와인 한 잔씩 기울이는 것을 즐기는 우리는 행복한 기분에 이끌리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게 사달이었다. 돈나무 그림을 가게 입구에 내려놓은 후 우리는 전시되어 있는 와인들을 -이 날따라 유심히-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와인들이 여섯 자리 숫자의 가격대였다. 마음을 접고 돌아서려는데 구석 한편에 꽤 괜찮아 보이면서도 우리가 추구하는 가격 범위대에 들어오는 와인이 눈에 들어왔다. 기쁜 마음으로 와인을 계산대에 올렸다. 그런데 웬걸, 가게 주인이 치즈를 서비스로 주겠다며 냉장고에 들어있던 고급 치즈 하나를 꺼내왔다. 우리가 사는 와인 가격의 삼분의 일은 족히 되어 보이는 치즈를 준다기에 '서비스가 참 좋은 곳이구나.'라는 생각에 또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계산을 하는데... 우리는 동시에 '헉'하며 서로 눈치를 살폈다. 우리가 집었던 와인 가격이 다섯 자리가 아닌, 여섯 자리였던 것이다. 금액 표 첫째 자리가 교묘히 감쳐줘 있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우리 둘 중 누구도 '잘못 집었으니 다시 물려달라'는 얘기를 차마 그 자리에서 하지 못했다. 그놈의 '가오'가 문제였던 것이다. 우리 생애 처음 겪은 황당한 사건이었다.


사장이 서비스로 준 고급 치즈 열 개는 족히 사 먹을 수 있는 돈이 그 자리에서 날아갔다. 가게를 나서면서 현타가 왔다. 어이없는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오다 결국 둘이 동시에 폭소를 터뜨렸다. 돈을 불러들인다는 돈나무 그림을 산 게 불과 몇 분 전이었다. 짝꿍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엉터리 그림이 아닐까 의심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이 그림을 가게 입구에 세워놓았잖아?"

  "그랬지...?"

  "그거야! 그래서 이 가게 입장에서는 돈을 불러들인 거지. 생각지도 못한 돈을...."

  "아~! 그럼 돈나무가 제 일을 한 거였네."


우리는 마주 보며 웃고 또 웃었다. 그림을 선택한 우리의 결정이 옳았다는 말을 하며. 오래간만에 맛본 자유가, 큰돈을 날리고도 '즐거워하는 우리'를 만들었던 걸까? 덤 앤 더머처럼 마냥 즐거워하던 우리는 돈나무를 소중히 트렁크에 싣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관 근처 잘 보이는 곳에 모셨다. 와인가게 주인에게 안겨준 행운을 우리 집에도 불러들이기를 간절히 바라보면서.


앞으로 이 녀석이 어떤 활약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들어올 때마다 그날의 따스한 햇살과 우리의 웃음이 기억나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우리와 기분 좋게 인연을 시작한 돈나무야, 앞으로 잘 부탁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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