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서

들어가며

by 지뉴

몇 년 전 아빠가 죽었다.

요양병원의 침대 위에서.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수명도 채우지 못한 죽음이었다.

아빠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명은 '알코올성 치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빠의 삶을 지탱해 준 그것이 결국엔 아빠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엄마는 내게 왜 아빠에게 '돌아가셨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느냐고 불만을 표시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말은 차마 내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지긋지긋하고도 질긴 인연이었다. 내게도 그리고 엄마에게도.

우리 가족에게 아빠는 ‘폭력’, ‘두려움’과 동의어 같은 존재였다. 아빠 혹은 배우자에게서 느껴야 할 따뜻함, 든든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쯤, 술에 절어 있지 않은 날의 아빠가 아니고서는.



죽은 아빠가 내게 남기고 간 기억의 대부분은 술과 관련된 것들이다.

대여섯 살 무렵, 고사리 손으로 동네 구멍가게에서 심부름하며 날랐던 투명하고 파란 빛깔의 소주병.

살기등등했던 눈빛, 아빠의 손이 엄마의 몸과 부딪치며 내던 무시무시한 소리.

가슴 철렁이게 만들던 아빠의 고함 뒤로 나를 울리던 엄마의 비명 소리, 술 취한 아빠가 잠들기만을 맘 졸이며 기다리던 순간들.

그리고 마침내, 집에서 도망치듯 달아나 숨어든 어두운 동네 한켠의 낡은 모텔방….



아빠의 죽음은 내게 이 모든 것과 작별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자유로운 인생을 살아갈 엄마를 지켜볼 '기대'를 의미했다.

그래서였다. '돌아가셨다'라는, 존대를 내포한 단어를 도무지 입에 올릴 수 없었던 까닭은.



그런데 내 기대감은 지금 몇 년째 희미해져가고 있는 중이다.

아빠의 죽음 후 여생을 자유롭게 즐기며 살기 바랐던 엄마는, 바깥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가두며 방구석에서 소리 없이 ‘붙박이'가 되어가고 있다. 젊은 시절 길들여진 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시절보다 별반 나을 것 없어 보이는 삶을 근근이 이어가며 이곳에서의 시간을 조금씩 떠나보내고 있다.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하며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엄마처럼 살지는 않으리라' 굳게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같은 여자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나의 엄마를 보며 얼마나 억울한 인생일까,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의사들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질병을, 어쩌면 고단했던 긴 세월이 안겨준 골병을 수년째 이고 사는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나는 조급한 마음에 엄마에게 잔소리를 하고, 밖으로 나가자고 손을 잡아끌고, 왜 그러고 사느냐고 화를 토해 내본다. 그러나 그때뿐, 답답한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해서, 내 알량한 글쓰기에 기대 보려 한다.

엄마가 이대로 사라져 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고 싶지는 않기에 세상 속에 엄마를 남겨보겠다는 의지로,

내 안에 묵은 답답함을 덜어내고 어딘가에 있을 나와 같은 마음의 동지를 찾아보고픈 간절함으로,

그리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굳어진 이 애증의 관계를 풀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은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애증(愛憎)’의 이야기를 기록해보려 한다.

엄마가 여전히 곁에 살아있는, 지금.

다섯 살 무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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