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동거

by 지뉴

어린 시절, 하루라도 빨리 집에서 독립하고 싶었다.

밖에서는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집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던 아빠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빠는 나이가 들며 젊은 시절의 물리적 폭력은 잦아들었지만 대신 언어적 폭력으로 가족을 힘들게 했다.



언어적 폭력은 결코 물리적 폭력보다 아픔과 상처가 덜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만큼 아프다'라고 드러내 보여줄 수 없어서 더더욱 치유되기 힘들었고, 그렇게 켜켜이 쌓여간 상처는 내 안에 화석처럼 굳어가는 것 같았다.



엄마의 상처는 나보다 몇 배는 더 컸으리라. 비록 우리에게 소리 내 말하진 않았지만, 엄마의 표정과 행동을 통해 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바랐다. 초등학교 시절 이후 절실하게. 제발 엄마가 아빠와 헤어지기를. 이런 내게 부모의 이혼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눈곱만큼도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시절을, 보잘것없는 여성의 처지를, 그리고 나와 동생을 핑계로 아빠와 함께 사는 삶을 택했다. 그렇게 새로운 생에 대한 희망은 좌절됐고, 나는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미웠다.

때로는 아빠로 인한 고통보다 바보처럼 사는 엄마를 곁에서 지켜보며 상처받고 분노하는 나 자신이 더 힘겹게 느껴졌다.




다행히 대학을 다니며 자취를 시작하게 됐다. 외로운 생활이었지만 홀가분한 마음이 컸다. 오랫동안 갇혀있던 감옥에서 탈출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철없던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괴로워할 일 따위는 없을 거란 생각에 마냥 기뻤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삶을, 오롯이 나만의 삶을 그리고 꿈꿨다.



엄마는 이따금 상경해 내 자취방에서 며칠씩 머물다 갔다. 아빠는 딸 뒤치다꺼리 하러 간다는 엄마를 크게 트집 잡지는 않았다. 하지만 의처증이 심했던 아빠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불쑥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핑계로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하려 들었다.



그래도 엄마는 즐거워 보였다. 다만 일주일이라도 아빠에게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심지어 행복하다고까지 말했다. 자취방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고, 나와 함께 장을 보러 다니며 엄마는 딸 앞에서 신혼집에서 알콩달콩 살고 있는 새색시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엄마가 보기 좋았지만, 그 순간에도 나는 생각했다. 앞으로 엄마와 함께 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면 좋겠다고.



그 후로 긴 시간이 흘렀다. 나는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그런데 글을 적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엄마는 동거인으로 우리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함께 살지 않았던 날들도 많다. 그러나 아빠의 장례를 치른 후,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를 대신해 손주들을 본격적으로 돌봐주기 시작하며 엄마는 생각지도 못했던, 우리 집의 오랜 동거인이 됐다.



앞으로도 엄마와의 동거는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할머니의 과한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손주들, 엄마처럼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딸, 장모님과 사뭇 다른 성격의 사위가 한 지붕 아래에서 엮어가는 이야기가 말이다.



홀로 있을 엄마가 불안한 나는, 엄마를 보며 시시때때로 불평불만과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엄마의 방'이 일찍 주인을 잃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엄마와 내가 서로에게서 자유로워질 날이, 건강하게 독립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생애 단 한 번도 독립적으로 살아보지 않은 엄마가, 엄마처럼 살고 싶어 하지 않는 딸에게서 벗어나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갈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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